대한화학회

임용이 되고나서 두번째 대한화학회를 다녀왔다. 포스터 발표만 할때는 아무런 마음의 부담이 없었는데, 구두발표 두 개를 하게 되어서 가기 며칠전부터 심적 부담이 컸다. 임용되고 나서 세미나를 여러번 했지만 이번처럼 다수의 잠재적 과제 평가자들 앞에서 하는 발표는 처음이라 긴장이 됐다.

발표 시작멘트

대통령의 말하기 책에서 본 기억에 따르면 처음 몇마디가 그 발표의 성패를 좌우한다. 연설과 세미나는 전달 방식이나 목표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첫 슬라이드에서 청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학회 발표 시작 멘트를 보면 ‘좌장과 조직위에 감사하다’, ‘이런 기회를 줘서 너무 영광이다’ 따위의 것들이다. 이런 감사 인사가 중요하긴 하지만 진부하다고 느껴졌고, 나라는 사람이 기억되도록 하는 것/청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첫 멘트를 열심히 고민했다.

내가 느끼기에 발표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봤다. 이 사람들은 도입부에 연구와 상관없는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하여 분위기 환기를 잘 시킨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좌장이 나랑 이름이 같은 형준이 형이라는 것과 이번 대한화학회에서 발표를 두 개 하게 됐다는 것을 이용해서 인사말을 만들었다.

“카이스트 화학과 김형준 A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인천대 화학과 김형준 B입니다. “

사실 이게 왜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

“제가 이번 대한화학회 때 발표를 두 개 하게 됐는데, 특별히 소개해 드릴만한 연구 성과가 많거나 욕심이 많아서 그런건 아니고요. 분과회에서 시키면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게 됐습니다.”

‘시키면 한다’라는 멘트가 너무 조폭같아 보여서 하지 말까 고민했는데 뭐 결론적으론 괜찮았던 것 같다. ‘나도 물리분과의 일원이니까 좀 기억해줘라’는 마음이었다.

“박사 때까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포닥을 가서 실험을 하게 됐습니다. 포닥 지도교수님과의 첫 미팅에서 ‘간단한 실험이야. 길어도 6개월? 한번 해볼래?’라고 해서 겁없이 시작한게 3년 반이 걸렸네요. 오늘은 이 간단한 실험 결과를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이 멘트는 여러번 써먹었는데 매번 효과가 좋아서 이제 그냥 외우고 다닌다.

발표 잘 들었다는 칭찬이 많아서 좋았다. 성봉준 교수님이 ‘내일 발표 시작도 꼭 유머로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물리분과 나와서 알게된 가장 좋은 분인 것 같다. 아무튼, 둘째 날 발표 시작멘트는 전날 물리분과 식사자리에서 형준이 형이랑 이야기했던 내용으로 했다.

“인천대 화학과 김형준 B입니다. 김형준 A교수님, 그리고 CMU 김형준 교수님을 모셔서 ‘김형준 in P-Chem’ 심포지움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2-3명 더 필요하니 학부생 중에 김형준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있으면 물리화학 전공할 수 있도록 특별히 잘 지도해주세요”

이런 멘트들 덕분인지 그낭 발표를 했기 때문인지, 지난번 대한화학회 때보다 훨씬 많은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동기부여

대한화학회를 갈때마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낀적이 많았다. 이번 학회는 배울 것도 많았고 학생들에게서 자극도 많이 받았다. 포스터 세션 발표 목록을 보니 흥미로운 발표들이 꽤 많이 있었다. 특히 연대 김동호 교수님 방 학생들이 엄청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자극이 많이 되었다. 포스터 퀄리티도 엄청 높고 내용도 굉장히 디테일하고 잘 알고 있었다. 10여명 가까이가 발표하는데 전부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 중에서 singlet fission을 연구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참 재미있게 연구 이야기를 듣고 서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내 이름을 듣더니 Zimmerman교수님 방에서 포닥하셨나요라고 물어봐서 놀랐다. 내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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