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맞이 효도의 일환으로 부모님과 <남산의 부장들>을 봤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정치색이 보수적이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사건탕탕절을 다룬 영화를 같이 보는 것이 효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토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이다보니 영화가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완전 몰입해서 보았다. 특히 김재규 역할을 맡은 이병헌의 표정 연기는 탁월했다. 이전에 <미스터 션샤인>을 볼 때에도 느꼈지만 대단한 배우이다. 사생활너, 로맨틱, 성공적의 문제 때문에 보기조차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한 사람의 사생활과 공인으로서의 생활(직업)은 분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병헌이 출연한 작품들을 큰 거부감 없이 계속 보고 있다.
경호실장 차지철이 청와대 내 미국의 도청장치를 찾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수색하면서 김재규랑 말 다툼을 하고 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타난다. 김재규의 기대와 달리 박 전 대통령은 차지철의 편을 들어주고, 그 때 김재규(이병헌)의 표정은 내 연인에게 다른 애인이 생긴 것을 알았을 때와 같은 슬픔, 배신감, 씁쓸함, 분노를 한번에 보여준다.
또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김재규가 청와대 주변을 돌아다니는 탱크를 보고 빡쳐서 차지철을 찾아갔을 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넘쳤던 장면이었다. 차지철과 말싸움 끝에 서로 총까지 겨누게 되는데, 그 때 쏟아내던 말과 그 표정은 그 때 그 시절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김재규의 모습이 저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마지막 연회자리. 거사를 결심하고 나서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술을 권할 때의 복잡 미묘한 표정이 아직도 떠오른다. 젊은 시절 함께 목숨 걸고 혁명한 동지를, 존경하던 상사를, 어쩌면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를 본인의 손으로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마 그 순간까지도 박 전 대통령이 차지철을 처내고 정신 차려서, 끝까지 가는 일이 없어도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이병헌이 영화 내에서 앞머리를 쓸어올리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데 이것이 표정연기와 더불어 그 당시 김재규의 심리상태를 잘 나타낸 것 같다. 김재규 평소의 습관이었는지,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한 심리에 있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미묘한 어색함과 긴장감.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서로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정치인의 모습에 자신의 삶을 너무 과다 투영하여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이 나에 대한 비난으로 느껴지는 것이 문제일까.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정치인이 비난 받는 것이 내 사상 또는 신념에 대한 공격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무튼 다음에는 좀 더 말랑한 영화를 골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