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Multi-ET in iSF

미시건에서의 3년을 투자한 논문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태양전지라는 다소 새로운 시스템을 레이저 실험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고통의 시작

미국 도착하고 3개월만에 해본 레이저 실험에서 꽤 괜찮은 preliminary data를 얻었다. 노이즈가 심해서 논문에 쓸 수 있는 figure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뭔가를 보았고, 굉장히 고무적인 결과였다. 폴 형님도 데이터를 보고선, 다전자 전이를 실험으로 직접 관찰하지 않고 kinetic 모델을 이용해서 증명한 결과만으로도 Science에 나왔다면서 엄청 흥분했었다. 포닥 1년만에 대박치고 금의환향하는 것인가하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레이저 실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좀 더 퀄리티가 좋은 figure를 얻기 위해 새로 실험을 해보려고 하니, 기온이 높아서 파워가 full로 올라가질 않고, alignment가 맞지 않아서 데이터가 안뜨고, 파장 조절이 안되고… 하나를 고치면 하나가 고장나고, 온갖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관련 분야 논문은 하루가 멀다하고 좋은 저널에 출간되고, 사람들이 점점 다전자 전이를 보는 것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니까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Citation alert에 singlet fission이란 글자만 보여도 숨이 막혔다. 대학원동안 해 온 연구는 남에게 scoop당할 염려가 없어서 한껏 묵히고 삭혀서 출판했는데, 이 field는 완전히 전쟁이었다. 이 논문이 어디 출판되느냐에 따라 내 커리어가 완전히 바뀔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 것 같다. 처음 1년차 때야 이거 망해도 다른 일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이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들었고 이 일에 내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첫 번째 레이저 실험

논문 윤곽을 대충 그려보니, 총 두 개의 레이저 실험이 필요했다. 첫 번째 레이저 실험은 이전의 논문 결과 재현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이 재현이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았다. 우리 연구실에서 발표한 논문인데다가, 그 논문의 2저자인 애가 실험을 도와줬는데도 이렇게 재현하기가 어렵다니. 실험이란 방법론에 회의감마저 들었다. 같은 실험기구인데 오늘 결과와 어제의 결과가 다르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레이저가 어느 순간 잘 작동하면 그 날 하루안에 논문에 들어갈 모든 실험을 다 끝내야했다. 실험 기구를 하루종일 써야하니까 주로 주말에 실험을 하게 됐고, 이 첫번째 레이저 실험을 끝내는데만 거의 1년이 걸렸다.

두 번째 레이저 실험

두 번째 레이저 실험의 결과가 논문 내용 전개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말인 즉슥, 두 번째 레이저 실험은 처음의 것보다 더 정교한 실험이고, 셋팅할 것이 더 많고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같이 일한 애들도 이 분야의 정통한 전문가는 아니어서 alignment를 하는 것이 상당히 주먹구구식이었다. 조작할 수 있는 변수가 한 두개가 아닌 상황에서 trial-and-error 방식으로 hot spot을 찾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는데, 근 1년이 지나갈 때쯤 그 기적이 찾아왔다. 오후 4-5시 쯤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아예 밤샐 각오를 하고 간식거리와 커피, 핫식스를 사왔다. 최대한 천천히 레이저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나씩 데이터를 뽑다보니, 새벽 3시를 넘겼다. 사실 이 때 데이터를 더 뽑았으면 지금의 communication에 연달아서 full paper 하나 더 쓸수도 있었을 텐데, 갑자기 레이저님이 맛가셨다.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은 피한 경우. 침대에 누웠지만, 핫식스 때문인지 실험결과 때문인지 심장이 쿵쾅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합성

또 다른 문제는 시약의 부족함이었다. 시중에 파는 시약이 아니라서 합성 그룹에서 얻어써야하는 처지였다. 그러다보니 실험을 잘 디자인해서 시약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같이 실험하는 애들이 시약을 실수로 흘리고,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폐수통에 버릴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하루는 폴 형에게 시약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렸더니, 나한테 합성 procedure가 나와있으면 너가 하면 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해서 그 이후로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 결국은 추가 실험이 더 필요하여 결국 합성그룹 앞에서 세미나를 하고 스페인에서 시약을 공수해왔다.

tail -f

이전 나의 계산 논문들이 실험 결과를 supporting하는 수준 혹은 trend를 보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논문은 실험결과에 직접 매칭해서 해석해야되는 논문이라, 계산-실험간의 정합성이 굉장히 중요했다. Active space 계산이라 빨리 되지도 않아서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했는데, 혹시 실험결과와 다른 데이터를 주면 어떻게해야하나 초조했다. 집에 와서도 tail -f 를 쳐놓고 아웃풋이 한 줄 한 줄 찍히는 걸 보고 기다렸다.

No matter who you are, I will find you.

JACS에 submit한지 3주만에 리비전이 왔다. 처음에는 두 명의 reviewer로부터 comment가 왔다. 둘다 major revision을 요구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질문의 예리함이 떨어져고, 무엇보다도 revision 온 것 자체가 어느정도는 accept해줄 마음이 있단 뜻이었기에 조금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식 site에 등록되지 않은 세 번째 reviewer로부터 무려 13개의 comment가 추가로 왔다. 이 reviewer가 정말 이 분야의 독한 전문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에서는 비교적 뉴비에 해당하는 폴 형님과 흑형님을 상대로 어디 감히 우리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코멘트가 엄청 많았다. 내용 전개에 있어 중요한 코멘트도 많았지만, 실험의 기초적인 디테일에 대해서도 많이 물었고, 다소 우리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의 질문도 있었다.

3주의 오로지 리비전만 했다. 출근해서 전날 쓴 response letter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고치고, 추가 실험하고 퇴근하기 전에 결과 업데이트하고. 집에서는 최대한 연구 생각은 하지 않고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이 때 많은 힘이 되어준 게 Office.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란 말도 있잖은가. 아무튼, 리비전을 끝내고 나니 response letter가 총 40장이 넘었다. 교수님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너무 감사했고,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1차 리비전 2주 후에 2차 리비전을 받았다. 폴 형님은 이미 이때부터 거의 된거랑 다름없다고 축하한다고 해서 너무 얼떨떨했다. 아직 official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데 옆에서 샴페인을 터뜨려버리니 좋아할 수도 안 좋아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2차 리비전은 비교적 말랑한 분위기였지만, comment 숫자 자체는 적지 않아서 꽤 힘들었다. JACS에 논문 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다. 계산 결과에 error bar를 추가하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comment도 받긴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 지적인 것 같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 포스팅에 자세히 써야지.

Spoiler Alert

2차 리비전 때 폴 형님의 축하에 더해 cover art 제출하는 대로 논문 accept해줄께라는 이메일을 받아버려서인지, official accept 이메일을 받았을 때 좋긴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 짜릿하진 않았다. 감정의 강도는 전체 감정의 양을 시간으로 나눈 것에 비례하는건가. 미리 결과를 들어버려서인지 기쁨의 강도가 생각보다 낮았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스포일러의 위험성…

Cover Art

Supplementary긴 하지만, 머리털 나곤 처음으로 journal의 cover image를 권유받았다. Cover image를 보내면 자기들이 심사해서 실을지 말지 결정하고, 선정이 되면 게재료에다가 추가로 $1000불 이상을 지불해야한다. 나는 그래픽 쪽으론 문외한인지라 제대로 된 cover image를 만들려면 누군가에게 외주를 맡겨야하고 그러면 당연히 비용이 발생할텐데, 만약 선정되지 않으면 그 돈 아까워서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앞섰다. 형들이 journal에서 먼저 물어본거면 웬만하면 되는 거라고 도전해보라고 했다. 일단 되기만 한다면, 임용 면접 세미나 때 한 페이지를 떼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일테니까.

다행히 고등학교 친구 중에 산디과를 간 친구가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개요를 그려서 부탁을 했다 (왼쪽 그림). 제출 이틀 전 나에게 앙상한 뼈대를 보여주어 내 애간장을 다 녹이더니(오른쪽 그림), 제출 당일날 아주 멋진 그림을 주었다 (아래 그림).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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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내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생각해서 친구에게 30만원 선에서 맞춰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뜻밖에도 폴 형님이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미 친구에게 부탁한 상황이라, 한국에 있는 프리랜서한테 외주를 준것이 계정처리가 될까? 영수증은 어떻게 발급받지? 온갖 서류 행정 걱정을 했는데, 폴 형이 너무 쿨하게 좋은 그림만 얻을 수 있으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이렇게 과제 책임자에게 최대의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이 미국과학계의 힘이자 여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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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출간 이후의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배웠다. 내 논문이 사람들 눈에 많이 노출되어야 인용이 될 것이고, 그래야 학계에서 내 평판이란 것도 생길 테니까. 많은 journal들이 신진연구자들에게 cover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준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1. Twitter

JACS twitter account manager에게 150자로 된 내용을 보내면 JACS twitter에 실어준다.

2. News & Views

Nature와 그 자매지들의 과학소식지 정도 되겠다. 나는 nature chemistry의 News & Views editor에게 기사제의를 받았다. 그냥 nature chemistry에 내주면 안되나요… (진행중)

3. c&en

Chemistry and Engineering News.

 

Singlet fission

아무래도 내 논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해 놓아야 할 것 같아 몇 자 끄적여본다.

Singlet fission (SF)은 하나의 singlet을 두 개의 triplet으로 나누는 방법으로, 태양에너지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지켜져야하기 때문에 당연히 singlet의 에너지는 triplet 에너지의 두 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큰 singlet 하나를 흡수하나 그것의 반에 해당하는 triplet 두개를 흡수하나 에너지 총양은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겠나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태양전지의 실리콘 패널은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차 (band gap)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band gap보다 큰 에너지를 가지는 광자의 잉여분의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낭비된다. (빨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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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에너지로 낭비되는 잉여분의 에너지를 다른 전자를 들뜨게 하는데 사용되도록 하는 과정이 SF다. 즉, SF는 기존 태양광 패널에서 낭비되는 단파장 (고에너지) 영역에서의 효율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장파장 (저에너지) 영역에서의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triplet fusi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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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과정을 묘사하는 화학식과 각 state의 전자배치 상태는 아래와 같다.

sf

두 개 이상의 분자에서 SF가 일어나는 경우 (intermolecular SF, xSF)는 분자들의 배열상태에 의해 성능이 제약을 받는 등의 한계점 때문에, 최근에는 한 분자안에서 SF가 일어나는 경우 (intramolecular SF, iSF)가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또한 spin state가 바뀌지 않는 S1–>TT 전이가 굉장히 빨리 일어나는 것에 비해, TT state를 T+T로 나누는 것은 굉장히 느리고 심지어 안 일어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iSF 분자의 TT state를 target으로 삼고, 여기에서 전자전이가 일어난다면 xSF가 가진 한계점을 극복함과 동시에 TT를 T+T로 나눌 때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전자 한 개보다는 전자 두 개를 수확하는 것이 효율향상에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아무튼, 요점은 iSF 분자의 TT state에서 다전자 전이를 보였다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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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Polymer Structure + Excited Kinetics

2016년 한해동안 나를 괴롭힌 cowork 논문이 작년에 출간됐다. (다 써놓고 publish 버튼을 깜빡하고 누르지 않았다니…)

태양전지에 쓸 목적으로 빛을 잘 흡수하고 power conversion efficiency (PCE)가 높은 고분자를 디자인하는 것은 재료 쪽에서는 꽤 핫한 연구주제다. PCE 기록 경신만 하면 JACS, Advanced Material 같은 high impact journal에 쓸 수 있다. 어떤 화합물이 왜 효율이 좋은지를 알아야 그런 분자를 디자인 할 수 있고, 그럴려면 햇빛에 의해 들뜬 전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야한다. Goodson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time-resolved spectroscopy (시분해 분광학,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광학 데이터의 변화를 보는 것)를 통해 excited state를 들여다보는 일을 주로 한다. 이번 논문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의 linker (furan, thiophene)를 두 개의 side group (dodecyl–C10H21, 2-ethylhexyl)에 조합시킨 총 네 종류의 고분자를 들여다봄으로써, linker와 alkyl 그룹이 태양전지 효율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다.

Thiophene          Furan

Linker가 다르면 photochemical property도 달라진다는 건 다소 예상된 결과였지만, side group의 종류에 따라 분자 구조가 많이 바뀔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양자 계산에서 pi backbone에 붙은 저런 solubilizing group은 무시하기 마련인데, 구조변화가 생각보다 커서 놀라웠다. 어떤 결과를 보면 항상 그것이 왜 맞는지 혹은 왜 틀린지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하신 대학원 지도교수님 말씀을 따라, 내 나름의 설명을 써갔는데 폴형이 동의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일반화학 수준에서도 논문에 실릴 만한 지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보면, 일반화학이 절대 쉬운 과목이 아니고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fluorescence decay rate 값을 구해보았다. 이때까지 내 논문에서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었다. Time-dependent density functional theory (TD-DFT) 계산을 오래동안 많이 해왔지만, 항상 에너지만 보다보니 이 계산이 왜 time-dependent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아무튼, transition dipole moment와 transition energy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계산. 사실 이 논문 쓸 때는 단위변환이 너무 복잡하고, 계산과 실험은 트렌드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지 절대값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단위변환을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서 arbitrary unit으로 처리를 해버렸다. 지금와서 보니 arbitrary unit이란 말이 썩 보기 좋지는 않다.

Fluorescence decay rate에서도 side group에 따른 영향이 굉장히 컸다. 이 때까지만 해도 non radiative decay와 quantum yield, 그리고 분자구조가 서로 다른 별개의 지식으로 내 머리 속에존재하고 있었는데, 폴 형이 그 부분들을 연결시켜주었다. 뭔가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다.

논문 제목이 너무 길다 (Evaluating the Effect of Heteroatoms on the Photophysical Properties of Donor−Acceptor Conjugated Polymers Based on 2,6- Di(thiophen-2-yl)benzo[1,2-b:4,5-b′]difuran: Two-Photon CrossSection and Ultrafast Time-Resolved Spectroscopy) 재료 쪽 논문들이 좀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논문 제목에 분자의 full name을 꼭 다 써야했는건지, 재료하는 사람들은 저걸 읽으면 분자구조가 머리 속에 그려지는건지, 내가 주저자가 아니라 고치라고 할 수 없는게 아쉽다.

이 일을 시작으로, Ricardo와 본격적으로 collaboration을 하게됐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연구 아이디어가 많은 친구다. 최근에 같이한 작업한 논문이 리젝되서 실망이 큰 것 같아 안타깝다.

잡담: 교수 위의 과학자

UM 화학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아니 UM 전체라고 해도 되겠다. 바로 Melanie Sanford 교수님. 연구를 잘하시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강의까지 잘하시는 줄은 몰랐다. 타과 학생들이 Sanford 교수님의 유기금속화학 수업 들으러 화학과에 올 정도라고 하니… (유기금속화학은 카이스트에서 500번대, 대학원 과목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게 전부 칭찬 일색이다. “화학적 직관이 엄청 좋아서 실험을 안해도 결과를 쉽게 예측한다”, “논문을 이해하기 쉽게 잘 쓴다”, “말을 엄청나게 빨리하는데 논리정연하다” 등등… 과학자가 들을 수 있는 찬사는 혼자 다 차지하신 것 같다. 보통 연구력이 높은 교수님들은 강의력이 조금 부족하기 마련인데, 이 교수님은 완전체인 것 같다.

당연히 다른 큰 학교에서 스카웃 제의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UM은 간판스타를 지키기 위해 역오퍼를 넣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지난 번에 들은 것은 NMR 기계 4대 였다. 화학과 전체를 위한 게 아니라 Sanford 교수님 실험실만 사용하는 것으로… (카이스트 화학과에 2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최근에 학교에서 제시한 역오퍼는, 논문/그랜트 작성을 전담할 새끼교수를 학교가 대신 8만불 주고 고용해주는 것이다. Sanford 교수님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제시하면되는 교수 위의 과학자가 된 것 같다.

연구: 남이 인쇄한 내 논문

전세계 어딘가에 내 논문을 읽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가 내 논문을 인쇄해서 줄까지 치면서 읽는 것을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에 줄을 그어놓은 것을 보고 내 뜻이 잘 전달됐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다가도, 돼지 꼬랑댕이에 달린 물음표 표시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폴 형님이 신입생에게 내 논문을 읽히는 것을 보니, 후속연구는 신입생에게 시킬건가보다. 후속연구가 필요하긴한데 그리 임팩트있는 논문이 되긴 어려워보여서, 누군가 대신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잘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폴이 만들어낼 결과물을 비교해보면 내가 PI로서 어느 정도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가늠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빨리 논문 써서 내 인용지수 좀 올려다오 뉴비야.

연구: 양자화학

내가 내 새끼 욕하는 건 돼도, 남이 내 새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얻다대고 양자화학 그거 대충 실험결과보고 두드려 맞추는거 아니냐는 막말을 해.

공부 좀 합시다.

연구: 썰을 푼다

현재 PI와 함께 일하면서 똑같은 데이터를 가지고도 썰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논문의 퀄리티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최근에 ‘아는 형님’이랑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문득 생각이 나서 잊어버리기 전에 글로 남긴다.

‘썰을 푼다’라고 하니까 얄팍한 술수처럼 들리는데, 오히려 정반대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현재 연구진행 상황 및 방향/미래에 해결해야할 문제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될 때 통찰력이 생긴다. 데이터 더미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현재 PI의 능력에 얼마나 감동했는지는 여기에 구구절절 써 놓았다.

들은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카이스트 화학과 슈퍼스타 유룡 교수님 이야기다. 동기형이 제올라이트 안쪽에서도 그래파이트가 자랄 수 있다라는, 동기형 말로는 carbon 정도에 나갈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교수님께 갔다고 한다. 교수님께서 데이터를 딱 보시더니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3D 그래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짜면 네이처 갈 수 있다라고 하셨고, 실제로 네이처 표지까지 갔다.

통찰력을 기를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결국 열심히 논문을 읽고, 많이 생각해보는 수 밖에는 없는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뭐 새로운 것이 없나 백날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프고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coupled triplet state에 관한 review를 쓸 일이 있어서, singlet fission과 관련된 1970년대에 나온 butadiene 논문에서 시작해서 2018년 논문까지 총 100 여편 정도를 읽었다.  (Singlet fission은 이제 연구 끝났다고 하는 모 박사님의 말씀과는 달리 2018년에도 네이처 켐, 잭스 줄줄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어느 정도 숲이 보이는 느낌이다. 그 전에는 연구 주제랍시고 머리에 떠오르면 선행연구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시작하다보니 남이 이미 해 놓은 일 중복된 경우도 있었고, 그 분야의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하다보니 좋은 퀄리티의 논문을 쓰지 못했다. 솔직히 선행연구라는 것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서 논문은 초록, 결론, 그림, 테이블 순서대로 훑어보기만 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고 행동이었는지 10년만에 깨닫는다.

책:인생=논문:연구

그 전에 쓴 research statement는 찢어야지…

연구: Figure 변천사

오늘의 연구 성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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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에서부터 차츰차츰 발전해서 4단계까지 왔을 때,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폴형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에게 아예 example setting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주면서 이렇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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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세심한 형님이었는데, 나의 개발새발 figure를 보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무튼, 굉장히 마음에 든다. 뭔가 고급 장난감같이 생겼다.


IQmol이 분자를 그리기에는 편한데 (두 번째 그림), 미적인 면에서는 VMD가 더 나은 것 같다. (세 번째-다섯 번째 그림) ball-and-stick model 말고도 licorie, tube 등 다양한 model을 제공해서, 여러 분자를 한 figure에 그릴 때 시각적으로 쉽게 구별이 가능하게 할 수있고 (윗 그림),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도 있다. (아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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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탄소는 검은색이라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청녹색칠을 한 것도 마음에 든다.

잡담: 망상

지난 8월부터 시작한 장장 4개월간의 망상이 끝이 났다.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기자들은 두 개의 기사를 미리 써 놓는다고 한다. 왠지 모를 자신감에 해피엔딩만 생각하고 최종발표의 날을 기다려왔는데, 내 예상과는 달라서 완전히 처음부터 써야한다. 언젠가 그 글도 세상의 빛을 보는 날이 오겠지.

‘나도 너 좋아해’라는 시그널인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나의 망상이었나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고, 주변 사람에게 많이 자랑한만큼 민망함도 크다. 이걸 어떻게 알려야할지. 미칠 것 같다.

친구이기도 하고 경쟁자이기도 한 사람의 성공을 라이브로 지켜봐야하고, 내가 받을 수도 있었던 축하를 상대방에게 건네야만 하는 것. 미치도록 속이 쓰리다. 기술의 발달이 원망스럽다. SNS가 없었으면 좋겠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술에 취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마음도 들지 않는다. 지금은 이 패배감과 처절함을 몸에 각인시켜야할 시간이다.

그래도 내 걱정을 해주는 주변사람들이 있어서, 인생을 아주 헛산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다. 그 사람들한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좀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 방에 앉아있으면 지나간 순간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몇 백번도 더 되돌려봤다. 이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어디를 잘한건지 어디를 못한건지 알아야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대방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여서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