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선거

  1. 아쉬움: 민주당이 대구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번만큼 좋은 판이 언제 다시 올까, 아니 다시 오긴 할까하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더 커진다. 선거운동이 허용된 기간을 대구 집에서 보냈는데 민주당 유세차는 많이 보지 못했다. 동구에서 제일 유동인구 많은 지역인 신세계 백화점 앞 삼거리에도 민주당 시장 플랜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공보물도 자한당 것이 훨씬 퀄리티가 좋았다. 선거운동 열심히 한다고 안 찍어줄 사람이 찍어주나 할 수도 있겠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다.
  2. 속상함: 선거결과 TK만 외딴 섬처럼 다른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 상에서 TK는 저주 받았느니, 독립해라느니 하는 글을 보면 속상하다. TK가 이런 극보수가 된 것은 끔찍한 역사적 사건의 반사작용이라고 분석한다. 이 사람들을 너무 악마화하지말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좀 더 따뜻하게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세대가 바뀌면서 8:2, 9:1의 구도에서 이제는 6:4, 5:5까지 온 지역들이 많다. 조롱과 비난은 사람의 마음을 더 얼어붙게 만들 뿐이다.
  3. 미안함: 투표장 앞에서 지역구에 출마한 젊은 구의원 후보를 직접 만났다. 파이팅 한 번 외쳐 줄 수도 있었는데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미안하다. 선거 다음날 얻은 정보를 보니 찍은 내 손가락을 분질러버리고 싶었다만… 길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선거유세단 아주머니들한테도 응원 좀 많이 해드릴껄.
  4. 실망: 내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했던 후보가 당선 인터뷰에서 보인 태도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당선 소감을 묻고 나서 앵커가 “최근에 제기된” 정도까지 말했는데 갑자기 “안들리네요. 여기까지만 할께요”라고 하고선 이어폰을 뽑아버렸다. 자질이 충분한 후보가 넘쳐나서 앞으로 20년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5. 걱정: 여당 소속 정치인 숫자가 많아진만큼 여기저기서 사고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고, 그것을 꼬투리잡아 대통령 흠집내기 바쁜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제발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니 1번, 대통령의 버프가 없었으면 당선되기 힘들었을 후보도 많이 보였다. 이런 호재를 바탕으로 좋은 사람들 많이 영입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후보교체를 시도해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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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나만의 슈퍼스타

면접 전날 강남에 있는 친구집에서 하루밤 자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서 설마 오늘 남순이가 야방을 할까?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방송 썸네일을 봤는데 스튜디오가 아니었다. 친구가 보더니 남순이가 있는 곳이 자기 집 근처라 여기서 10분도 안걸린다고 했다. 드디어 오늘 만나는 건가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강남 술집골목으로 트렁크를 들고 뛰어갔다. 방송화면과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 사이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었다. 휴대폰 들고 이리저리 기웃기웃거리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는데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몰랐다. 남순아라고 바로 반말하기엔 너무 꼰대같고, 남순씨는 이상하고,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남순이형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급한 마음에 박남순이라고 부르면서 뛰어갔다.

평소에 화면으로 볼 때는 슬림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더 말랐다. 얼굴은 화면에서 보이는 것만큼 잘생겼고. 만나면 이런저런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응원도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막상 만나니까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다른 시청자들과 차별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미국에서 잘 보고 있어요!” 한마디 남기고, 기념셀카를 한방 찍었다. 미국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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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간으로 낮이 되면 친한 친구들도 다 자러가고 너무 외로웠는데, 우연히 알게 된 남순이란 BJ는 한국 시간 밤 11시에 방송을 시작해서 새벽까지 달렸다. 하루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생겼다. 거의 매일 방송을 하니까 랩에서 자주 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정이 들었던 것 같다. 방송 초창기부터 봐서 그런지 왠지 내가 키운 새끼 같은 느낌도 든다. 잘되는거보면 내가 괜히 뿌듯하고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하도 많이 이야기했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아프리카충이 되어버렸다…

아프리카 방송은 대본이 없는 방송이다보니 즉흥적인 요소가 많고, 특히 남순이는 다른 BJ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해서 항상 기대감이 든다. 하지만 1부를 다소 수위가 높은 컨텐츠를 하다보니 세간의 평이 좋지 않다. 그래도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변명해주고 싶다.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소소하게 진행하는 2부가 더 재미있다고… 아무튼, 세간의 평을 상당히 의식하는지 컨텐츠를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멋있고 어떻게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앞으로 더 흥해라.

잡담: 종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짜리몽땅하고 옆으로 푹 퍼진 레터 용지가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미국 생활 만 3년을 채우고 나니 A4 용지가 너무 길고 불안정해보인다. 몇 단어 안 읽은 것 같은데 줄을 바꿔야 되고, 밑으론 왜 이렇게 긴지…

미드: The Office

Pennsylvania 주의 작은 도시 Scranton에 있는 paper company의 한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 직장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기대하고 1화를 봤는데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국 시트콤이라면 이런 맛이라는 것을 1화부터 강력하게 보여준다. 영국 드라마 리메이크한거거든할 수도 있겠지만, 영국판 Office를 3화까지 본 내 느낌에는 미국판이 좀 더 활발하고 똘기 넘치는 느낌이다.

다소 우스꽝스럽고 눈치없는 상사 Michael Scott. 뭔 저런 사람이 있나 싶은데,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능력은 없지만 직원들과 회사에 대한 애착은 엄청나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할 때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 또 하나의 가족. 직원을 해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엄청 괴로워하고, 직원들 일이라면 자기가 먼저 나선다. 무엇보다도 매사에 너무나 심하게 긍정적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삶에서 저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정말 능력인 것 같다. 아무튼, 내가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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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앵글이 조금 독특하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목적으로 사무실을 촬영하는 설정이라,  약간 아마추어스러운 느낌도 나지만 그 특유의 느낌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중간 중간 인터뷰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큰 흐름의 스토리가 있다면 속마음을 다 말해주는 것이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겠지만, 한 편 한 편이 워낙 개판이다보니 오히려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총 9시즌이 있는데, 마이클은 시즌7을 끝으로 하차한다. 이때부터 재미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시즌8은 정말 봐주기 어렵다.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닌, 그냥 병맛쇼. 그나마 마지막 시즌에는 여러 가지 얽히고 섥힌 일들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는 맛이 있다. 마지막 에피도스는 극 안에서의 다큐멘터리 촬영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쫑파티를 하는 장면으로, 시청자가 보는 드라마의 피날레와 극중 캐릭터들의 쫑파티가 겹쳐져서 마치 함께 마무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즌8에서의 모든 분노가 마지막 장면에서 다 녹는다.

Pam-Jim 커플의 이야기는 병맛 막장 시트콤 Office에 한 줄기 달달한 빛이다. 이 커플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주제는 Jim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팸과 주말부부가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이다. 가족들에게 좀 더 부유함을 주고 싶고 더 큰 도시에서 자기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Jim, 평범한 회사원이라도 가족이 항상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Pam. 나는 이때까지 Jim의 논리로 이별을 택한 것은 너이고 이별로 상처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겠다.

저런걸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종이를 파는 일 자체는 매력이 정말 없어보이는데, 직원들이 자기 직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모교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것과 비슷한 거겠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자부심과 그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 외로운 세상에서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학교 후드 하나 더 사야지

영어공부하기에도 꽤 좋은 편이다. 배우들이 중서부-북동부 출신이 많다보니, 흔히 말하는 미국 표준어에 가장 가까운 발음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인터뷰 장면들에서는 독백으로 말하기 때문에 오디오가 물리지도 않는다.

미국 생활 첫 해의 우울함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을 준 How I met your mother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재미있다. 최근 일이 끝없이 밀려와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Office 볼 때 만큼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Scranton의 작은 회사로 떠날 수 있어서 좋았다.

미드: Orange is the New Black

인생에서 역대급의 멘붕을 일으킨 사건을 겪고나니, 뭔가 집중할 거리가 필요했다. 운동할 기력은 없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집중력도 없는 상태라 나에게 남는 것은 미드 뿐이었다. Netflix origianal 시리즈 중 가장 많은 view를 기록한 Orange is the New Black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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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복 색깔 때문에 제목에 orange가 나오는건 알겠는데, the new black은 무슨 말인지도 모른체 쭉 봤다. 이 글을 쓰기 직전 몇 가지를 찾아보다가 A is the new black이라는 말이 A가 새로운 유행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숙어임을 알게되었다. 감옥에 갇히면서 죄수복을 입게 된 사람들을 재치있게 표현한 것 같다.

마약상인 여자친구를 돕다가 공항에서 잡혀서 징역을 살게 된 Piper가 교도소에서 겪는 이야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은 이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게 위로가 되었다. 남의 불행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 것처럼 잘못되고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지만, 현실은 그랬다.

교도소를 주제로 한 미드라고 하면 프리즌 브레이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메인테마가 ‘탈옥’이라면 OITNB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프리즌 브레이크가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고 위기의 연속이라면 OITNB은 반대로 코메디+드라마 요소가 훨씬 강하다. 교도소 안에서 반란이 일어나 교도관이 죽는 심각한 상황마저도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무작정 실없이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고 나름 큰 흐름을 관통하는 심오한 주제들이 있다. 다양한 인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남성 교도관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범죄, 교도소를 민영화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두고 대립하게 되는 사회복지 등등.

등장인물들이 꽤 많다. 얼핏 머리속에 떠오르는 인물만 해도 20명 가까이 되는 것 같다.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생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Nicky, Morello, 그리고 Black Cindy다.

Nicky는 순전히 목소리 때문이다. 특유의 껄렁껄렁한 말투와 걸걸한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소위 말하는 걸크러쉬가 이런 것인가 싶다. Morello는 약간 사랑에 미친 이탈리아 여자다. 좋게 말하면 낭만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스토커… 아무튼,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순진한 소녀감성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Piper가 교도소에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굉장히 친절하게 도와준다. 예전에 미수다에 나온 크리스티나가 영어를 한다면 이런 악센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Black Cindy는 말하는 내용 자체도 너무 재미있고, 흑인 영어 특유의 익살스러움, 오버액션 같은 것들이 너무 좋다. 머리스타일도 귀여운데, 코셔푸드가 맛있어서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의 엉뚱한 행동들은 더 귀엽다.

신기하게 한국말이 두 번이나 나온다. Piper가 Red에게 “한국에서는 그것을 ‘기분’이라고 부르죠”라고 말하는 장면과 Piper 동생이 임신하고”음악가로서의 ‘영감’을 받기 위해 레코드샾에 왔다”고 하는 장면이다. 김치는 가끔 나오는데 기분과 영감은 너무 의외의 것이라 반가웠고, 발음이 생각보다 정확해서 놀랐다.

영화: 1987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로 시작된 6월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을 드디어 보았다. 기대한만큼 몰입해서 봤다. 멀쩡한 학생들을 빨갱이로 ‘만들고’, 수사관에게 애국자인지 월북자인지 선택을 강요하고, 시위하는 학생들을 때려잡는 백골단의 모습 등을 보면서 분노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런 악귀와 같은 짓을 한 것일까란 궁금증이 항상 있었다. 이게 나라를 위한 길이다와 애국의 관점만으론 그들의 잔인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으로도 구체적인 행동의 동기를 시원하게 설명할 순 없는 것 같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그런 악마화된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바로 대공처장 (김윤석)이 교도관 간부 (유해진)를 취조하면서 자기 가족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장면이다. 고아인 한 남자아이를 데려와서 부모님이 키워줬더니 인민민주주의하겠다면서 지주인 자기 부모님을 죽창으로 찔러죽였고, 자신은 숨어서 그 장면을 다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김윤석에게 공산당은 악마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은 개인의 잘못을 쉽게 타자화, 범주화시킨다. 타인의 잘못을 비난하고 싶을 때, 그 개인이 속한 여러 집단 중에서 나와 다른 부분을 찾는다. 성별, 나이, 인종, 고향, 교육 등 나와 그들을 가를 수 있는 기준은 차고 넘친다.  적당한 기준을 찾은 후에는 타인이 속한 집단 전체를 개인과 동일시하여, 그 집단을 욕하기 시작한다. 개인을 직접 비난한다는 부담을 덜고, 추상화된 집단을 언급함으로써 거친 표현을 사용하는 죄책감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요즘 것들은, 흑인들은, 전라도 사람들은, 대학도 안 나온 것들은 등으로 시작하는 말들. 예를 든다는 핑계로도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말들이다.

개인의 경험은 그 어떤 다른 간접 체험보다 강렬하다. 더군다나 수적으로 제한된 경험을 한 개인에게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고 해봐야, 그 사람에겐 자신이 겪어본 개인이 그 집단을 묘사할 수 있는 유일한 체험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김윤석이 불쌍해보였다. 우리 사회가 개인을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해서 하나의 괴물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열심히 보는 Orange is the New Black이란 드라마에서, 약쟁이가 된 범죄자에게 가족들이 we failed you라고 말하면서 우는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영화: 강철비

동생이 말하길, 요즘 한국에서 강철비, 1987, 신과함께 이 세 영화를 안보면 간첩 취급당한다고 한다. 자기도 미국에 있으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북한의 스파이가 내려와서 공작을 펼치는 그런 흔한 액션 영화일 것 같아서 큰 기대를 안했는데, 여러 가지 국내/국제 정치에 관련해 내 생각과 비슷한 포인트들이 있어서 재미있게 봤다.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전쟁 여부를 결정하는 미국과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한국. 미국이 너희의 안보는 너희 스스로 책임져야지, 지켜달라고 징징거리지만 말고 동맹국 입장도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 입맛이 씁쓸했다. 전시작전권도 없는 나라한테 뭘 바라는건지. 동맹이란 것이 결국 서로에게 이득을 취할 부분이 있을 때에만 함께 피를 흘리는 그런 수준의 관계인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준 참전용사들에 대한 은혜는 잊지 말아야겠지만, 그 참전을 결정한 워싱턴 사람들이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해서 도와준 것만은 아니란 것도 항상 인지해야겠다.

북한을 어떻게 처리해야되는가를 두고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간의 갈등도 흥미로웠다. 이경영 아저씨가 당선인 역할로 나와서 이 아저씨가 북한 다 때려부시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와 코드가 맞는 말들을 해서 당황했다. 북한을 핵폭하면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동포로 생각하겠는가, 한 민족이라는 당위성을 빼고서 경제적인 면에서라도 통일을 생각해봐야된다는 것들이 특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대통령에게 북한을 폭격하기로 결정했다는 전화를 받을 때 읽고 있던 책 ‘원래 하나였던 것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한다’, 사무실에 걸려있는 ‘행동하는 양심’ 등의 장치로 당선인의 컬러를 보여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 북한 1호와 핵무기를 트레이드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한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남북한이 똑같은 숫자의 핵무기를 가지면 거시적인 힘의 균형은 이뤄지겠으나, 핵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대상이 두배로 늘어난다. 북한의 김씨를 어르고 달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미국 총기 소유 찬반 논란과도 직접 연관이 된다. 옆집 사람이 총을 소유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로, 나도 총을 가지고 혹시 모를 옆집 사람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한다 (공화)와 옆집 사람 총까지 싹 다 국가가 압수하거나 관리해야한다(민주)로 나뉜다. 나는 쫄보라 그런지 몰라도, 그냥 총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평소엔 북한이라는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다가 한국행 비행기가 중국, 북한을 거쳐 바로 서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빙 둘러 인천으로 들어갈 때마다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13시간 비행을 끝내고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가고 싶은데, 방향을 틀때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다.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근대적인 것이라면, 통일까진 아니고 서로 왕래라도 가능한 사이가 되면 우리 삶도 많이 바뀔 것 같다.

책: 동물 농장

얼마전에 러시아 혁명사에 대해 조금 알아보았는데, 때마침 동물 농장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보니 정답을 알고 시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조금 들긴 했지만, 비유가 너무 적절하고 신랄해서 즐거웠다.

각 동물들이 상징하는 인물이 누구일까 유추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두 리더 돼지인 스노볼과 나폴레옹으로 표현되는 인물이 트로츠키, 스탈린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으니, 러시아 혁명사 공부를 아주 허투루 한 것은 아닌가보다.

그 외에도 10월혁명, 독일의 러시아 침공 등 러시아 혁명 전후의 역사적 사건을 우화로 잘 만든 것 같다.

책: 채털리 부인의 연인

귀족 채털리 마님 코니, 하체불구인 그녀의 남편 클리퍼드,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되어있는 사냥터지기 멜로즈 사이의 이야기.

하체가 마비되어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남편 클리퍼드는 와이프 코니에게 다른 남자와의 ‘가벼운 연애’를 통해서 자식을 잉태해오면 자기 자식처럼 키우겠다고 말한다. 코니와 사냥터지기의 첫만남이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풍겼다. 하체가 마비된 샌님 클리퍼드와 대비되는 사냥터지기라니…  코니가 샤워하는 사냥터지기를 훔쳐보는 것에서, 이 둘 사이에 뭔가 있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멜로즈가 기르는 어미닭이 새끼꿩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코니가 잉태한 애의 아빠는 사냥터지기구나란 걸 알 수 있었다.

둘은 어떤 정신적 교감이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전에 섹스부터 한다. 요즘 시체말로 선섹스 후연애냐, 선연애 후섹스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둘은 선섹스 후연애를 하는 셈이다. 육체적 관계가 정서적 친밀감을 높인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특별함에 대한 환상이 아직 남아있는 나에겐 선섹스 후연애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코니가 사냥터지기를 몰래 만나러 가는 장면, 그런 코니를 기다리고 있는 사냥터지기의 모습, 둘이 보내는 하룻밤, 베니스로 떠나기전 마지막밤을 보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연애할 때의 설렘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나저나, 영어의 사투리는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번역하시는 분이 사냥터지기의 사투리를 ~했구만유, ~했쥬와 같은 충청도 사투리로 바꿔놔서 자꾸 백종원 아저씨가 떠올랐다…

책: 러시아 혁명사 강의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은 세계 역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인지를 모르니까 그저 막연하게 공산주의자들이라는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얕게나마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다른 곳에서 저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된다면, 머리속에 어떤 캐럭티인지 정도는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뒷부분에서 다루어지는 좌파정당이 지향해야하는 가치와 미래의 모습들을 통해서 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혁명의 긍정적/부정적인 부분을 잘 받아들이면 지금 현재의 자본주의가 가지는 한계점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좋은 책을 읽고 이런 허섭스러운 감상평밖에 쓸 수 없는 내가 부끄럽다. 실제 책은 꼼꼼하게 설명해놓았는데 누워서 읽다보니, 머리속에 정리가 안되어서 rephrase가 불가능하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