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러시아 혁명사 강의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은 세계 역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인지를 모르니까 그저 막연하게 공산주의자들이라는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얕게나마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다른 곳에서 저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된다면, 머리속에 어떤 캐럭티인지 정도는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뒷부분에서 다루어지는 좌파정당이 지향해야하는 가치와 미래의 모습들을 통해서 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혁명의 긍정적/부정적인 부분을 잘 받아들이면 지금 현재의 자본주의가 가지는 한계점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좋은 책을 읽고 이런 허섭스러운 감상평밖에 쓸 수 없는 내가 부끄럽다. 실제 책은 꼼꼼하게 설명해놓았는데 누워서 읽다보니, 머리속에 정리가 안되어서 rephrase가 불가능하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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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뉴스의 시대

어떤 뉴스가 좋은 뉴스이고, 이상적인 뉴스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시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2008년, 어떤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아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당시에는 진보/보수, 옳음/그름, 선/악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굉장히 무지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좋은 신문이란 꾸밈이나 과장, 그리고 기자의 편견 없이 사실을 드라이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과연 어떤 신문이 그런 일을 가장 잘하는가를 중점에 두고 여러 신문을 탐색했다.

나는 진보/보수 둘 다 사실을 왜곡할 것이므로 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둘의 시각을 모두 섭렵한다면 나 스스로가 그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한쪽’이 자기들의 논거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맛사지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흰 탈락이야! 안타깝게도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이지도 않다. 한마디로 모양 빠지는 느낌.

알랭 드 보통은 좋은 뉴스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최저임금이 오르고, 법인세가 내리고, 누가 국회의원이 된 것이 지니는 의미,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내가 어떻게 다 알겠는가. 한 걸음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는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실을 설명해주는 해설서 혹은 사실들을 취합하여 자기 주장을 펴는 논문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정확한 사실 전달은 당연히 기본으로 깔고 가야되고. 운이 좋게도 내가 선택한 신문/매체들은 심각하게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실수는 있는 것 같다), 올바른 관점을 가진 것 같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덤으로 주장도 꽤나 논리적이다.


재난 뉴스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인상깊었다. 날이면 날마다 굉장히 끔찍한 사건, 사고가 뉴스에서 흘러 나온다. 이런 끔찍한 일이 뉴스를 통해 소개될때 사회는 어떤 이익을 얻게 될까. 아마도 구성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재난 뉴스를 보면 그런 공익추구보다는 대중의 관음증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부분을 부각시키는 것에 온통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의붓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등 흔히 우리가 막장이라고 부르는 그런 소재들 말이다.

인류가 오랜기간 사랑해온 유명한 고전소설들도 사실 이런 막장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이런 것들이 명작이 되는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책 속의 인물에 깊이 공감하여 자신과 동일시하게 만들고 그 사람이 초래한 비극이 마치 나의 잘못인것 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반성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나와는 아주 다른 존재가 아니라,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특정 상황이 되면 저럴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공포라는 알 수 없는 두려움/혐오감을 본인이 주연이 되는 비극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뉴스는 독자로 하여금 범죄자를 완전히 타인시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사회계몽의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뉴스 한 편 한 편이 저런 명작이 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사고들만이라도 보다 깊이있게 다뤄주는 기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외에도 정치/해외/경제/셀러브리티/소비자정보 뉴스를 세부적으로 분석하여 뉴스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평생을 지방에서 살아온 나는 서울에 간다는 것은 큰 이벤트 중 하나였다. 가기 며칠 전부터 어디를 구경해야지, 누구를 만나야지 계획을 열심히 세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대부분 술집이 많고 접근성이 좋은 강남이나 친구들 집이 있는 동네만 다녔던 것 같다.

서울에 궁궐을 포함한 문화유산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워낙에 아는 것이 없었기에 딱히 가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끔 인터넷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 찍기에 참 좋은 배경이구나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이 출간된 소식을 듣고 읽어보았다. 이 시리즈가 예전부터 굉장히 유명한 것은 알았지만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 그림이 많아서 실제 그곳을 여행하는 것처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궁궐이나 옛 건물의 구조를 설명하는 단어들 중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서 머리에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사진이 많은 도움이됐다.

또 문화재를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과 그 뒤에있는 역사와 배경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음식을 평가할 때에도 나는 그저 맛있다, 맛없다 정도 밖에는 표현할 줄 몰라서 멋이 없는데, 주변에 그런걸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문화재 답사에서만큼은 그런 답답함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차원적으로 문화재의 구조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에서 있었던 일, 건물과 관련된 사람의 이야기 등을 들려주는 것도 좋았다. 한 건물에 얽힌 여러 왕의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가끔 정신이 혼미해지긴 했다. 조선왕조의 역사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있으면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전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고나서 전문가가 된줄 알았는데, 지금와서 남은건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철고순’으로 외운 왕이름 순서뿐이다.

여러 궁궐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성균관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숙사에서 아침밥 잘 안먹고, 사감 선생님 눈 피해서 놀러다니고 했던 건 똑같은 것 같다.

“유형의 문화재에서 무형의 가치를 새긴다”

미드: The Crown Season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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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만든 작품, The Crown.

영국 영어

여왕님의 우아한 영국식 악센트에 반해버려서 시즌2까지 쭉 봤다. 역시 영어는 영국영어. 글로는 옮길 수 없는 그 특유의 억양은 정말 사랑스럽다. 우리나라 사투리 중에 저런 사랑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아,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매력으로 봤을 때는 일본어도 영국 영어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 성우들 칭찬해…

OO 엄마

시즌1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까지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어서 다큐의 느낌이 강했는데, 시즌2는 궁중 연애물 느낌이 많이 난다. 엘리자베스와 필립이라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과, 여왕의 그늘에 항상 가려져있는 에든버러 공작 (필립의 지위)이 가지는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갈등.

에든버러 공작은 항상 여왕의 그늘에 가려서, 여왕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존감도 낮아지고 둘 사이엔 사소한 일로도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많아진다. 내가 삶을 주도해나가는 남자와 그것을 서포팅하는 여자의 구도가 너무 익숙해서, 두 역할의 성이 바뀐 장면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보는 내내 어색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한 사람을 고유의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도 느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누구의 여자친구, 누구의 엄마 등이 되겠다. 나는 언젠가 결혼을 하더라도 와이프를 절대 누구 엄마라고 부르진 않을 것이다.

성공적인 결혼 생활

여왕이 나라의 중대한 일은 전부 정치인들과 의논하고, 자기의 의견은 언제나 뒷전이고 서포팅만 해야하는 처지 때문인지 필립은 자주 겉돈다. 방탕한 생활에 쉽게 빠지고 외도도 여러번한다.

한 커플이 연애를 넘어서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가면 큰 일이 없는 이상 적어도 30년 이상은 함께 해야한다. 연애도 3년이 넘어가면 대단하다고 하는데, 한 지붕안에서 볼꼴 못볼꼴 다 보면서 어떻게 30년 이상을 살수 있을까. 이건 내가 25살때부터 생각해본 주제이다.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부부가 각방을 쓰면 어떨까 싶다. 돌이켜보면 나는 연인관계라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나 자신을 없애고 상대방에게도 너를 없애라는 요구를 한 것 같다. 둘만을 위한, 둘만 있는 그런 관계가 되다보니 삶이 풍요롭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집에 살되 각자의 공간이 있어서 삶의 독립성을 어느정도 유지한다면, 부부라는 관계속의 나와 혼자 독립된 나 사이의 균형이 어느정도는 맞지 않을까 싶다. 또 일주일에 두-세시간은 정해놓고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Royal Family

입헌 군주제는 행정 수반을 시민의 손으로 뽑는 대통령제에 비하면 덜 떨어진 정치제도라고 생각했는데, 이 미드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왕족이 계속 남아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의 먼 미래보다 당장의 정치 생명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과 그런것을 초월한 로얄 패밀리. 그런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롤모델이 우리 사회에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영국여행 

드라마를 보면서 영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캐릭터와의 만남을 통해 의미를 가지는 공간을 직접 체험해보는 게 나에겐 더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게임: Clash Royale Challenger 2

클래시 로얄 처음 시작할 때는 전설 카드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징징댔는데, 이젠 대부분의 전설카드가 3렙이다. 카드도 메가나이트 하나 빼곤 전부 오픈. 일반 카드 만렙도 3개나 된다. 기사, 아이스스피릿, 미니언.

오늘 드디어 4300점을 넘어서 challenger 2를 달았다. 4250의 문턱에서 몇 번이나 주저 앉았던지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시즌말이라 그런지 꽤 쉽게 올라갔다. challgner 2를 기념하여 현재 쓰고 있는 덱을 기록해 놓고 싶었다.

클로덱

3렙 광부를 썩히고 싶지 않아서 광부 위주로 덱을 짰다.

주공격

가장 강력한 공격은 기사/광부+해골무덤+빙결이다. 이 조합이 엘릭서 12짜리라 엘릭서 2배 모드 들어가기 전에는 타이밍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주로 2분동안 맞아주면서 주로 방어를 하다가 1분 타이밍 때 한방으로 역전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빙결카드를 결정적인 순간이 올때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빙결카드는 노출만 되면 상대방이 유닛들 사이를 멀찍이 떨어뜨려서 재미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광부+기사/머스킷+아스, 광부+인드와 같이 광부가 어그로 끌고 나머지 딜러들이 딜하는 조합도 꽤나 재미를 본다. 서로 눈치보고 있을 땐 광부+아스를 던져서 상대방의 과잉방어를 유도한 후에 반격을 가하는 재미도 있다.

방어

인드를 넣기 전에 대형 유닛한테 맨날 털려서 클로 접기 직전까지 갔다. 전 덱은 인드 대신 프린세스여서 짤짤이 덱 막는건 최고였는데, 자이언트/페카/메가나이트를 앞세운 댁에는 판판이 깨졌다. 결국 마지막 퍼즐은 인드였던 것 같다.

대형유닛 – 아스로 어그로 왔다갔다하게 만든 후에 인드로 처리

호그라이더 – 기사/머스킷+아이스 스피릿. 한 두대 맞긴 하지만 역러쉬가 가능하다.

고블린갱 – 머스킷+타워로 처리

미니언패거리 – 머스킷+아스+타워. 미패+호그로 들어오는 조합이 가장 막기 어렵다. 아스로 미패를 전부 양념칠해도 미패 녹이는 동안 호그가 타워 피 절반으로 빼 놓기 때문이다.

고블린통 – 통나무.

Challenger 3

이 덱으로 챌린저 3을 갈 수 있을까? 빙결 타이밍에 따라 총 데미지량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서 눈치 싸움이 중요하다. 그 타이밍을 갈고 닦으면서, 인드와 통나무 3렙가고, 빙결 6렙을 만들 수 있다면 4600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구: 오랜만에 실험

실험 하나만 하면 논문 마무리인데, 너무 하기가 싫어서 몇 달을 미뤘다. 슬슬 비슷한 컨셉의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러다가 스쿱당하고 다른 실험까지 추가로 해야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험을 시작했다.

일단 실험을 하기 싫은 이유는, 내가 이론쟁이라 실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실험은 그냥 용액 섞고 달가닥 훅하면 끝인줄 알았는데 직접해보니까 생각해야되는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실수를 하게 되고 다시 해야되는 상황이 자꾸 생기고, 테크닉이 부족하다보니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런걸 소위 손탄다고 한다. 아무튼, 잘 모르니까 두렵고, 두려우니까 하기 싫어진다.

저 두려움에는 ‘단순히 나는 실험을 잘 모른다’보다 CV실험하면서 생긴 트라우마가 더 크게 작용한다. 이론랩이라 실험기구가 하나도 없어서 실험을 하려면 이 랩 저 랩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것을 얻고, 실험기구 사용법을 물어야한다. CV를 찍기 위해 A 랩에 갔는데, 극도의 불친절과 귀찮아하는 눈빛, “너희 전극은 너희가 사서 써야지?”라고 쏘아붙이는 말투 등으로 엄청난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실험방법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그 간단한 실험을 하는데 6개월 가까이 소모했다는 피로감까지. 정말 한동안은 그 연구실 애들 마주치는 것도 너무 싫었고, 그 랩 근처는 가기도 싫었다. 정확히는 싫다기보단 무서웠다.

다행히 레이저 실험은 co-advisor 랩에서 할 수 있어서, 애들이 친절하게 도와줬다. 애들이 착한 것인지, co-advisor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애들이 실험에 능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CV실험에 비하면 꽤 즐겁게 했다.

마지막 실험은 A 랩에서도, co-advisor 랩에서도 할 수 없는 실험이라 제 3의 랩을 찾아야했다. 그렇게해서 찾은 랩이 Stephenson 그룹. 다행히 우리랩에서 rotation할 때 내가 도와준 학생이 있어서 큰 힘이 됐다. A 랩에서는 언급도 하지 않았던 많은 테크닉을 배웠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액체질소를 이용한 실험까지 해봤다. 오랜만에 NMR도 찍어보고. 산소/물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결과는 실패.

그런 실험기구가 어디있을까하고 찾다보니, Sanford group이 나왔다. Nature, Science 공장장, 마귀할멈, 세상에서 영어를 가장 빠르게 말하는 사람 등등의 별명을 가지신 Melanie Sanford 교수님. 랩메이트 Ian의 co-advisor가 Melanie라서 그 랩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한 명 소개받고 만나기로 했다. 한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긴 하지만 여전히 부담감은 있었다. 이메일 답장이 엄청 느리고 한 두번 씹히기까지 하니까 불안감이 더 커졌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순박한 친절한 친구였다. 내가 잘 못할 것 같으면 자기가 해줄수 있다고 하길래, 그럼 니가 해주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고 내가 한다고 했다. 염치가 있어야지. 사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옆에서 계속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Sanford group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보통 glove box 한 두개 가져다놓고 실험하는데, 여기는 학생숫자마다 glove box가 있다. 한 벽면 전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랩 안에 몇 개의 문이 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모 주립대에서 NMR 기계 네 대를 사주는 조건으로 스카웃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했는데, 연구실을 직접 둘러보니 그정도 미끼가 아니고선 꿈쩍도 안할법한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Paul이 처음 인터뷰할 때 Sanford 그룹과 코웍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걸 Stanford로 잘못듣고 거절한 내 귀가 원망스럽다.

아무튼,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마음은 너무 홀가분하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오랜만에 집에서 영화를 봤다. 40인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볼 때마다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든다.

치매에 걸린 전직 살인마 설경구와 현직 경찰 살인마 김남길의 대결. 설경구는 최근 설화로 조금 이미지가 깎이긴 했지만 훌륭한 배우다. 살인마와 순진한 아빠를 왔다갔다하는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김남길의 사이코패스 연기도 준수했던 것 같다. 다만 영화에서 다루는 사이코패스의 이미지가 너무 획일화된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든다. 실제 사이코패스들이 그런건지는 몰라도 영화에서 나오는 사이코패스들은 하나같이 존댓말을 사용한다. 좀 새로운 유형을 보고 싶다. 딸내미는 역할은 설현이 맡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설현, 설현하는지 잘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너무 잘 알게됐다. 초반씬에서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갈수록 괜찮았다.

치매란 게 정말 무서운 병인것 같다. 부모님이 컴퓨터 사용하시면서 잘 모르시는 걸 가끔 물어보신다. 대부분 친절하게 대답해드리는데, 한 두번 가르쳐드린걸 또 물어보시면 짜증을 내버린다. 만에 하나라도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시면 수백번 수천번이고 같은 대답을 해드려야되는데 나는 그런 준비가 되어있는걸까. 내가 치매에 걸리는 상황도 너무 무섭다. 힘들고 지친 상황을 버텨내는 원동력인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인데, 치매에 걸리면 그들을 잘 못알아볼 것 아닌가. 내 머릿속 그들과의 추억만 가지고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힘든 곳이다.  이건 사실 치매랑 관련이 있는건진 모르겠는데, 체면이나 위신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나의 내밀한 세계를 여과없이 모두 말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다. 수면내시경할때도 저 걱정을 했는데…

아무쪼록 치매 치료제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미드: Stranger Things Season 1 & 2

SF는 딱히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영화로도 잘 보지 않는다. 거기다가 주인공이 얼라들이라니. 그래도 Netflix의 추천작이니까 한 편은 봐보자는 생각으로 틀었다가, 하루에 3-4편씩 일주일만에 다 봐버렸다.

초등학생 네 명이 시골마을에서 겪게되는 미스터리한 일을 이들 스스로 파헤치는 과정을 잘 그려놨다. 아역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아서 시종일관 유치한 분위기로 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좀 있었는데, 어두운 분위기를 요소요소에 잘 섞어놨다. 오히려 어두운 분위기에 유치한 요소를 살짝씩 가미했다고 해야될 것 같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역배우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온갖 미스터리한 현상을 자기들이 빠져있는 게임세계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극중에서 더스틴이라고 불리는 아역배우의 매력은 글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시즌2에서는 윌이 거의 주인공급으로 등장한다. 악마의 영매 역할을 하는데 저 나이에 저런 연기가 가능한가 싶은 장면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공포영화를 찍고나면 성인배우들도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하는데 아무일 없기를 바란다.

극중 배경으로 나오는 70년대 미국 묘사도 꽤 리얼하다. 주인공의 형, 누나들의 헤어스타일이나 패션만 딱 봐도 아 70년대 미국이구나라는걸 알 수있다. 메인 스토리의 곁가지로 등장하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 학교생활을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중 하나였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국민학교 때 학교에 숨겨진 비밀을 찾겠다며 친구들과 헛짓거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밤이되면 동상의 눈동자가 돌아간다는 걸 확인하려고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첬더니 동상의 눈은 꿈쩍도 안했는데 우리끼리 오들오들 떨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후, 성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사총사가 출연한 토크쇼.

잡담: 교수님 발소리

대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교수님께서 랩에 언제 오실지 몰라서 항상 긴장을 했다. 그래서 교수님 방문 앞에 CCTV를 달면 좋겠다, 교수님 목에 방울 달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개소리를 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내 귀가 진화했다. 교수님 발소리, 방문소리를 기가막히게 구별해 내기 시작했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은 워낙 천천히 걸으시고 방문을 좀 세게 닫으시는 경향이 있으셔서 쉽게 구분이 되는가보다했다.

포닥 지도교수님은 그냥 평범한 걸음걸이라 말로는 그 특징을 딱히 묘사할 수가 없다. 거기다가 오피스에 거의 오시지도 않는다. 분기별 이벤트 수준. 그래서 학습할 발소리도, 그 기회도 충분치 않았는데 희안하게 잘 감지한다. 어제도 클래시 로얄하고 있는데 특유의 발소리가 들려서 그대로 화면 덮고 연구하는 척 하고 있었더니 교수님이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이런 감각만 발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