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화학과 일반화학2 마지막 수업을 끝으로, 첫 학기를 마무리했다. 무엇이든 마지막, 끝이라는 말을 붙이면 너무 서글픈 느낌이 든다.
첫 학기 수업으로 화학과, 물리학과 일반화학2를 맡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주말마다 강의노트를 만드느라 어깨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지금와서 모아놓고 보니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든다. 비록 내년에 교과서가 바뀐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열심히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판서를 열심히 받아적고있다고 믿고 싶다,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수업 마치고 질문하는 학생들을 보니까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한 기분도 들고. 아무튼 강의하는 게 생각보다는 재미있었다. 또 과제 채점하다보면 친구 답안지를 베껴서 내는 애들도 있지만, 스스로 풀려고 노력하는 애들이 많아서 더 잘 가르쳐주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됐다.
수업은 판서로 진행했다. 파워포인트를 띄어놓고 설명하는 수업은 (적어도 나에게는) 루즈한 면이 있어서… 물론 더 큰 이유는 판서 강의 그 자체의 멋이지만.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파워포인트 수업에 훨씬 익숙하다. 특히, 책을 요약해서 만든 슬라이드가 공부하기에 편하니까 시험기간에도 그것만 본다고 한다. 내 수업에도 요점 정리한 것을 파워포인트에 올려달라는 중간 강의평가가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꼰대멘트 책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개강 때면 도서관 앞에 교과서 사려는 줄이 쭉 늘어서곤 했는데… 아무튼, 너희들이 공부 쉽게 할 수 있도록 내용 요약한거 올려주고 그러진 않을 거니까 책을 구해서 꼭 읽어보길 바란다고 했다. 수업을 듣고 교과서 조차 소화하지 못한다면 사회에 나가서 새로운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고 만들어가겠냐고, 다소 가시 돋힌 소리를 했는데 다행히 저걸로 시비거는 애는 없었다.
학생들의 수준 가늠이 안돼서 비교적 쉽게 냈던 중간고사가 125점 만점에 평균 80점에 육박하는 물시험이 되어, 기말고사는 변별력을 위해 좀 어렵게 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푸는 학생들이 많았다. 비록 평균이 20점 가량 내려가긴 했지만, 아주 시험을 포기한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었다. 작정하고 어렵게 낸 한 문제는 아무도 풀지 못했지만, 125점 만점에 108점이란 고득점을 올린 친구도 있었다. 학생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단 사실에 기쁘면서도, 시험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대나무숲 강의평가 5점이 깨진 것은 조금 속상하긴 했다. 시험 어렵다는 것이 강의 평가 감점 이유가 된다니…
아직 기말강의 평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간 강의평가는 5점 만점에 4.8, 4.9를 받았으니 꽤 잘 받은 편이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착하다’. 다른 교수님들은 착하단 말 많이 나와서 좋겠다고 했지만, 사실 강의실에서 교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잘 가르친다’일텐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첫학기라 강의가 매끄럽지 못한 면이 조금 있나보다. 우수강의상이 욕심나긴 하지만, 첫 학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싶다.
기말고사까지 채점을 끝내고 나니 성적 입력 시즌이 되었다. A와 B의 숫자는 학교 교칙으로 정해져있어서 그 숫자 만큼만 줄 수가 있다. 다만 그 안에서 플러스의 비율은 교수의 재량껏 조절이 가능하다. 학점 인플레 방지를 위한 제도이겠지만, 1-2명 정도의 유동성은 주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점수를 정렬하고 오면, A0 막차와 B+ 첫머리의 성적 차이가 시험 점수 1,2점 차이로 갈리는 때가 있다. 그런 케이스가 눈에 띄면 문제마다 부분점수를 정말 공평하게 준 것일까하는 질문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시험 점수 1,2점 차이가 A0와 B+로 갈릴만큼 큰 차이일까…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은 내가 가르친 학생들 모두가 좋은 성적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노력한만큼의 점수를 받아가야한다는 마음이 충돌하는 것이다. 다 자식같은 아이들이라 모두 A를 주고 싶지만, 그건 열심히 한 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된다. 나름의 절충안을 만들어 성적 입력을 끝냈지만, 아직도 계속 머리가 아프다.
방학이라 연구할 시간이 많아져서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뭔가 텅빈듯한 허전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