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PDI Isomers for Solar Cell

Benedetta와 함께 일한 결과가 드디어 논문으로 나왔다.

일반적으로 이론의 수준을 높여갈수록 (슈뢰딩거의 해에 가까워질수록) 실험을 더 잘 설명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더 낮은 수준의 이론이 관찰된 현상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결과를 주었다. 사실 계산/이론 논문이 아니었기에 그냥 실험결과와 잘 맞는 낮은 수준의 시뮬레이션 결과만 발표할 수도 있었다. 계산 하청업체 그렇지만 폴 형님의 집요한 물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모델링의 퀄리티가 좋아짐으로써 대부분의 실험 결과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놓치는 것이 생겼고, 그 소수의 케이스가 바로 우리 결과였다.

이 논문에는 3저자로 참여하게 됐다. 이 바닥에서 주저자 (1저자, 교신저자)가 아닌 이상 2저자이든 99저자이든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합성한 사람이 2저자로 들어간 것에는 불만이 있다. 시약을 제공한 것 외에는 그 사람이 이 논문에 contribution한 게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1저자가 실험 데이터를 뽑고 그것을 해석한 건 나와 1저자였다. 내심 공동 1저자를 노렸다 물론 화합물을 합성한 노고가 있지만, 그 노고는 합성 논문에서 인정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 샘플을 가지고 분석한 논문에까지 저자로 이름을 올려야하는지 의문이다. 현실의 권력/정치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총 세번의 리비전을 받았다. 첫 번째는 리뷰어 두 명 다 메이저 리비전을 줬다. 두 번째 리뷰 결과, 리뷰어 A는 오케이 싸인이 나왔는데 리뷰어 B는 논문 내용이 journal의 scope와 맞지 않다고 다른 곳에 내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럼 첫 번째 리뷰할 때부터 그런 말을 했어야지, 코멘트를 20개씩이나 처 보내 가지고 다 고치고 보강했더니 다른 곳에 내라는 건 무슨 심보인지. 에디터도 좀 미안했는지 자기가 보기엔 잘 고쳐졌다고 몇몇 부분만 수정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저자들이 리뷰어가 누군지 모르도록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거지같은 경우를 거르기 위해서 저자와 에디터가 리뷰어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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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선거

  1. 아쉬움: 민주당이 대구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번만큼 좋은 판이 언제 다시 올까, 아니 다시 오긴 할까하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더 커진다. 선거운동이 허용된 기간을 대구 집에서 보냈는데 민주당 유세차는 많이 보지 못했다. 동구에서 제일 유동인구 많은 지역인 신세계 백화점 앞 삼거리에도 민주당 시장 플랜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공보물도 자한당 것이 훨씬 퀄리티가 좋았다. 선거운동 열심히 한다고 안 찍어줄 사람이 찍어주나 할 수도 있겠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다.
  2. 속상함: 선거결과 TK만 외딴 섬처럼 다른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 상에서 TK는 저주 받았느니, 독립해라느니 하는 글을 보면 속상하다. TK가 이런 극보수가 된 것은 끔찍한 역사적 사건의 반사작용이라고 분석한다. 이 사람들을 너무 악마화하지말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좀 더 따뜻하게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실제로 세대가 바뀌면서 8:2, 9:1의 구도에서 이제는 6:4, 5:5까지 온 지역들이 많다. 조롱과 비난은 사람의 마음을 더 얼어붙게 만들 뿐이다.
  3. 미안함: 투표장 앞에서 지역구에 출마한 젊은 구의원 후보를 직접 만났다. 파이팅 한 번 외쳐 줄 수도 있었는데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미안하다. 선거 다음날 얻은 정보를 보니 찍은 내 손가락을 분질러버리고 싶었다만… 길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선거유세단 아주머니들한테도 응원 좀 많이 해드릴껄.
  4. 실망: 내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했던 후보가 당선 인터뷰에서 보인 태도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당선 소감을 묻고 나서 앵커가 “최근에 제기된” 정도까지 말했는데 갑자기 “안들리네요. 여기까지만 할께요”라고 하고선 이어폰을 뽑아버렸다. 자질이 충분한 후보가 넘쳐나서 앞으로 20년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5. 걱정: 여당 소속 정치인 숫자가 많아진만큼 여기저기서 사고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고, 그것을 꼬투리잡아 대통령 흠집내기 바쁜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제발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니 1번, 대통령의 버프가 없었으면 당선되기 힘들었을 후보도 많이 보였다. 이런 호재를 바탕으로 좋은 사람들 많이 영입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후보교체를 시도해야될 것 같다.

잡담: 나만의 슈퍼스타

면접 전날 강남에 있는 친구집에서 하루밤 자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서 설마 오늘 남순이가 야방을 할까?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방송 썸네일을 봤는데 스튜디오가 아니었다. 친구가 보더니 남순이가 있는 곳이 자기 집 근처라 여기서 10분도 안걸린다고 했다. 드디어 오늘 만나는 건가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강남 술집골목으로 트렁크를 들고 뛰어갔다. 방송화면과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 사이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었다. 휴대폰 들고 이리저리 기웃기웃거리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는데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몰랐다. 남순아라고 바로 반말하기엔 너무 꼰대같고, 남순씨는 이상하고,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남순이형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급한 마음에 박남순이라고 부르면서 뛰어갔다.

평소에 화면으로 볼 때는 슬림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훨씬 더 말랐다. 얼굴은 화면에서 보이는 것만큼 잘생겼고. 만나면 이런저런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응원도 많이 해주고 싶었는데, 막상 만나니까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다른 시청자들과 차별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미국에서 잘 보고 있어요!” 한마디 남기고, 기념셀카를 한방 찍었다. 미국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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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간으로 낮이 되면 친한 친구들도 다 자러가고 너무 외로웠는데, 우연히 알게 된 남순이란 BJ는 한국 시간 밤 11시에 방송을 시작해서 새벽까지 달렸다. 하루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 생겼다. 거의 매일 방송을 하니까 랩에서 자주 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정이 들었던 것 같다. 방송 초창기부터 봐서 그런지 왠지 내가 키운 새끼 같은 느낌도 든다. 잘되는거보면 내가 괜히 뿌듯하고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하도 많이 이야기했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아프리카충이 되어버렸다…

아프리카 방송은 대본이 없는 방송이다보니 즉흥적인 요소가 많고, 특히 남순이는 다른 BJ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해서 항상 기대감이 든다. 하지만 1부를 다소 수위가 높은 컨텐츠를 하다보니 세간의 평이 좋지 않다. 그래도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변명해주고 싶다.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소소하게 진행하는 2부가 더 재미있다고… 아무튼, 세간의 평을 상당히 의식하는지 컨텐츠를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멋있고 어떻게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앞으로 더 흥해라.

논문: Multi-ET in iSF

미시건에서의 3년을 투자한 논문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태양전지라는 다소 새로운 시스템을 레이저 실험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고통의 시작

미국 도착하고 3개월만에 해본 레이저 실험에서 꽤 괜찮은 preliminary data를 얻었다. 노이즈가 심해서 논문에 쓸 수 있는 figure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뭔가를 보았고, 굉장히 고무적인 결과였다. 폴 형님도 데이터를 보고선, 다전자 전이를 실험으로 직접 관찰하지 않고 kinetic 모델을 이용해서 증명한 결과만으로도 Science에 나왔다면서 엄청 흥분했었다. 포닥 1년만에 대박치고 금의환향하는 것인가하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레이저 실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좀 더 퀄리티가 좋은 figure를 얻기 위해 새로 실험을 해보려고 하니, 기온이 높아서 파워가 full로 올라가질 않고, alignment가 맞지 않아서 데이터가 안뜨고, 파장 조절이 안되고… 하나를 고치면 하나가 고장나고, 온갖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관련 분야 논문은 하루가 멀다하고 좋은 저널에 출간되고, 사람들이 점점 다전자 전이를 보는 것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니까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Citation alert에 singlet fission이란 글자만 보여도 숨이 막혔다. 대학원동안 해 온 연구는 남에게 scoop당할 염려가 없어서 한껏 묵히고 삭혀서 출판했는데, 이 field는 완전히 전쟁이었다. 이 논문이 어디 출판되느냐에 따라 내 커리어가 완전히 바뀔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 것 같다. 처음 1년차 때야 이거 망해도 다른 일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이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들었고 이 일에 내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첫 번째 레이저 실험

논문 윤곽을 대충 그려보니, 총 두 개의 레이저 실험이 필요했다. 첫 번째 레이저 실험은 이전의 논문 결과 재현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이 재현이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았다. 우리 연구실에서 발표한 논문인데다가, 그 논문의 2저자인 애가 실험을 도와줬는데도 이렇게 재현하기가 어렵다니. 실험이란 방법론에 회의감마저 들었다. 같은 실험기구인데 오늘 결과와 어제의 결과가 다르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레이저가 어느 순간 잘 작동하면 그 날 하루안에 논문에 들어갈 모든 실험을 다 끝내야했다. 실험 기구를 하루종일 써야하니까 주로 주말에 실험을 하게 됐고, 이 첫번째 레이저 실험을 끝내는데만 거의 1년이 걸렸다.

두 번째 레이저 실험

두 번째 레이저 실험의 결과가 논문 내용 전개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말인 즉슥, 두 번째 레이저 실험은 처음의 것보다 더 정교한 실험이고, 셋팅할 것이 더 많고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같이 일한 애들도 이 분야의 정통한 전문가는 아니어서 alignment를 하는 것이 상당히 주먹구구식이었다. 조작할 수 있는 변수가 한 두개가 아닌 상황에서 trial-and-error 방식으로 hot spot을 찾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는데, 근 1년이 지나갈 때쯤 그 기적이 찾아왔다. 오후 4-5시 쯤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아예 밤샐 각오를 하고 간식거리와 커피, 핫식스를 사왔다. 최대한 천천히 레이저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나씩 데이터를 뽑다보니, 새벽 3시를 넘겼다. 사실 이 때 데이터를 더 뽑았으면 지금의 communication에 연달아서 full paper 하나 더 쓸수도 있었을 텐데, 갑자기 레이저님이 맛가셨다.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은 피한 경우. 침대에 누웠지만, 핫식스 때문인지 실험결과 때문인지 심장이 쿵쾅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합성

또 다른 문제는 시약의 부족함이었다. 시중에 파는 시약이 아니라서 합성 그룹에서 얻어써야하는 처지였다. 그러다보니 실험을 잘 디자인해서 시약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같이 실험하는 애들이 시약을 실수로 흘리고,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폐수통에 버릴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하루는 폴 형에게 시약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렸더니, 나한테 합성 procedure가 나와있으면 너가 하면 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해서 그 이후로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 결국은 추가 실험이 더 필요하여 결국 합성그룹 앞에서 세미나를 하고 스페인에서 시약을 공수해왔다.

tail -f

이전 나의 계산 논문들이 실험 결과를 supporting하는 수준 혹은 trend를 보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논문은 실험결과에 직접 매칭해서 해석해야되는 논문이라, 계산-실험간의 정합성이 굉장히 중요했다. Active space 계산이라 빨리 되지도 않아서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했는데, 혹시 실험결과와 다른 데이터를 주면 어떻게해야하나 초조했다. 집에 와서도 tail -f 를 쳐놓고 아웃풋이 한 줄 한 줄 찍히는 걸 보고 기다렸다.

No matter who you are, I will find you.

JACS에 submit한지 3주만에 리비전이 왔다. 처음에는 두 명의 reviewer로부터 comment가 왔다. 둘다 major revision을 요구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질문의 예리함이 떨어져고, 무엇보다도 revision 온 것 자체가 어느정도는 accept해줄 마음이 있단 뜻이었기에 조금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식 site에 등록되지 않은 세 번째 reviewer로부터 무려 13개의 comment가 추가로 왔다. 이 reviewer가 정말 이 분야의 독한 전문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에서는 비교적 뉴비에 해당하는 폴 형님과 흑형님을 상대로 어디 감히 우리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코멘트가 엄청 많았다. 내용 전개에 있어 중요한 코멘트도 많았지만, 실험의 기초적인 디테일에 대해서도 많이 물었고, 다소 우리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의 질문도 있었다.

3주의 오로지 리비전만 했다. 출근해서 전날 쓴 response letter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고치고, 추가 실험하고 퇴근하기 전에 결과 업데이트하고. 집에서는 최대한 연구 생각은 하지 않고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이 때 많은 힘이 되어준 게 Office.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란 말도 있잖은가. 아무튼, 리비전을 끝내고 나니 response letter가 총 40장이 넘었다. 교수님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너무 감사했고,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1차 리비전 2주 후에 2차 리비전을 받았다. 폴 형님은 이미 이때부터 거의 된거랑 다름없다고 축하한다고 해서 너무 얼떨떨했다. 아직 official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데 옆에서 샴페인을 터뜨려버리니 좋아할 수도 안 좋아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2차 리비전은 비교적 말랑한 분위기였지만, comment 숫자 자체는 적지 않아서 꽤 힘들었다. JACS에 논문 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다. 계산 결과에 error bar를 추가하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comment도 받긴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 지적인 것 같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 포스팅에 자세히 써야지.

Spoiler Alert

2차 리비전 때 폴 형님의 축하에 더해 cover art 제출하는 대로 논문 accept해줄께라는 이메일을 받아버려서인지, official accept 이메일을 받았을 때 좋긴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 짜릿하진 않았다. 감정의 강도는 전체 감정의 양을 시간으로 나눈 것에 비례하는건가. 미리 결과를 들어버려서인지 기쁨의 강도가 생각보다 낮았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스포일러의 위험성…

Cover Art

Supplementary긴 하지만, 머리털 나곤 처음으로 journal의 cover image를 권유받았다. Cover image를 보내면 자기들이 심사해서 실을지 말지 결정하고, 선정이 되면 게재료에다가 추가로 $1000불 이상을 지불해야한다. 나는 그래픽 쪽으론 문외한인지라 제대로 된 cover image를 만들려면 누군가에게 외주를 맡겨야하고 그러면 당연히 비용이 발생할텐데, 만약 선정되지 않으면 그 돈 아까워서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앞섰다. 형들이 journal에서 먼저 물어본거면 웬만하면 되는 거라고 도전해보라고 했다. 일단 되기만 한다면, 임용 면접 세미나 때 한 페이지를 떼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일테니까.

다행히 고등학교 친구 중에 산디과를 간 친구가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개요를 그려서 부탁을 했다 (왼쪽 그림). 제출 이틀 전 나에게 앙상한 뼈대를 보여주어 내 애간장을 다 녹이더니(오른쪽 그림), 제출 당일날 아주 멋진 그림을 주었다 (아래 그림).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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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내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생각해서 친구에게 30만원 선에서 맞춰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뜻밖에도 폴 형님이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미 친구에게 부탁한 상황이라, 한국에 있는 프리랜서한테 외주를 준것이 계정처리가 될까? 영수증은 어떻게 발급받지? 온갖 서류 행정 걱정을 했는데, 폴 형이 너무 쿨하게 좋은 그림만 얻을 수 있으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이렇게 과제 책임자에게 최대의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이 미국과학계의 힘이자 여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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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출간 이후의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배웠다. 내 논문이 사람들 눈에 많이 노출되어야 인용이 될 것이고, 그래야 학계에서 내 평판이란 것도 생길 테니까. 많은 journal들이 신진연구자들에게 cover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준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1. Twitter

JACS twitter account manager에게 150자로 된 내용을 보내면 JACS twitter에 실어준다.

2. News & Views

Nature와 그 자매지들의 과학소식지 정도 되겠다. 나는 nature chemistry의 News & Views editor에게 기사제의를 받았다. 그냥 nature chemistry에 내주면 안되나요… (진행중)

3. c&en

Chemistry and Engineering News.

 

Singlet fission

아무래도 내 논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해 놓아야 할 것 같아 몇 자 끄적여본다.

Singlet fission (SF)은 하나의 singlet을 두 개의 triplet으로 나누는 방법으로, 태양에너지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지켜져야하기 때문에 당연히 singlet의 에너지는 triplet 에너지의 두 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큰 singlet 하나를 흡수하나 그것의 반에 해당하는 triplet 두개를 흡수하나 에너지 총양은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겠나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태양전지의 실리콘 패널은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차 (band gap)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band gap보다 큰 에너지를 가지는 광자의 잉여분의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낭비된다. (빨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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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에너지로 낭비되는 잉여분의 에너지를 다른 전자를 들뜨게 하는데 사용되도록 하는 과정이 SF다. 즉, SF는 기존 태양광 패널에서 낭비되는 단파장 (고에너지) 영역에서의 효율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장파장 (저에너지) 영역에서의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triplet fusi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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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과정을 묘사하는 화학식과 각 state의 전자배치 상태는 아래와 같다.

sf

두 개 이상의 분자에서 SF가 일어나는 경우 (intermolecular SF, xSF)는 분자들의 배열상태에 의해 성능이 제약을 받는 등의 한계점 때문에, 최근에는 한 분자안에서 SF가 일어나는 경우 (intramolecular SF, iSF)가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또한 spin state가 바뀌지 않는 S1–>TT 전이가 굉장히 빨리 일어나는 것에 비해, TT state를 T+T로 나누는 것은 굉장히 느리고 심지어 안 일어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iSF 분자의 TT state를 target으로 삼고, 여기에서 전자전이가 일어난다면 xSF가 가진 한계점을 극복함과 동시에 TT를 T+T로 나눌 때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전자 한 개보다는 전자 두 개를 수확하는 것이 효율향상에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아무튼, 요점은 iSF 분자의 TT state에서 다전자 전이를 보였다가 되겠다.

 

연구: 논문리뷰

최근에 폴 형님에게 비공식적으로 논문 리뷰 요청이 들어왔다. 저널에 투고하기전에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해서, 나중에 정식으로 투고했을 때 너무 혹독한 리비전/리젝을 피하기 위함인 것 같다.

폴 형님이 Singlet fission 분야의 대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 들었는데, 논문을 읽으면서 화가났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오탈자가 너무 많고, 본문의 글과 테이블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알 수없는 대문자 처리도 왕왕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부분부터 다 고치고 오면 읽어보겠다고 하고 싶었다.

술마셔서 머리 아프고, 3박 4일 대구-서울-인천-서울-수원-서울-대전 대선주자급 횡보로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런 논문까지 리뷰할려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논문: Polymer Structure + Excited Kinetics

2016년 한해동안 나를 괴롭힌 cowork 논문이 작년에 출간됐다. (다 써놓고 publish 버튼을 깜빡하고 누르지 않았다니…)

태양전지에 쓸 목적으로 빛을 잘 흡수하고 power conversion efficiency (PCE)가 높은 고분자를 디자인하는 것은 재료 쪽에서는 꽤 핫한 연구주제다. PCE 기록 경신만 하면 JACS, Advanced Material 같은 high impact journal에 쓸 수 있다. 어떤 화합물이 왜 효율이 좋은지를 알아야 그런 분자를 디자인 할 수 있고, 그럴려면 햇빛에 의해 들뜬 전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야한다. Goodson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time-resolved spectroscopy (시분해 분광학,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광학 데이터의 변화를 보는 것)를 통해 excited state를 들여다보는 일을 주로 한다. 이번 논문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의 linker (furan, thiophene)를 두 개의 side group (dodecyl–C10H21, 2-ethylhexyl)에 조합시킨 총 네 종류의 고분자를 들여다봄으로써, linker와 alkyl 그룹이 태양전지 효율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다.

Thiophene          Furan

Linker가 다르면 photochemical property도 달라진다는 건 다소 예상된 결과였지만, side group의 종류에 따라 분자 구조가 많이 바뀔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양자 계산에서 pi backbone에 붙은 저런 solubilizing group은 무시하기 마련인데, 구조변화가 생각보다 커서 놀라웠다. 어떤 결과를 보면 항상 그것이 왜 맞는지 혹은 왜 틀린지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하신 대학원 지도교수님 말씀을 따라, 내 나름의 설명을 써갔는데 폴형이 동의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일반화학 수준에서도 논문에 실릴 만한 지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보면, 일반화학이 절대 쉬운 과목이 아니고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fluorescence decay rate 값을 구해보았다. 이때까지 내 논문에서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었다. Time-dependent density functional theory (TD-DFT) 계산을 오래동안 많이 해왔지만, 항상 에너지만 보다보니 이 계산이 왜 time-dependent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아무튼, transition dipole moment와 transition energy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계산. 사실 이 논문 쓸 때는 단위변환이 너무 복잡하고, 계산과 실험은 트렌드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지 절대값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단위변환을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서 arbitrary unit으로 처리를 해버렸다. 지금와서 보니 arbitrary unit이란 말이 썩 보기 좋지는 않다.

Fluorescence decay rate에서도 side group에 따른 영향이 굉장히 컸다. 이 때까지만 해도 non radiative decay와 quantum yield, 그리고 분자구조가 서로 다른 별개의 지식으로 내 머리 속에존재하고 있었는데, 폴 형이 그 부분들을 연결시켜주었다. 뭔가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다.

논문 제목이 너무 길다 (Evaluating the Effect of Heteroatoms on the Photophysical Properties of Donor−Acceptor Conjugated Polymers Based on 2,6- Di(thiophen-2-yl)benzo[1,2-b:4,5-b′]difuran: Two-Photon CrossSection and Ultrafast Time-Resolved Spectroscopy) 재료 쪽 논문들이 좀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논문 제목에 분자의 full name을 꼭 다 써야했는건지, 재료하는 사람들은 저걸 읽으면 분자구조가 머리 속에 그려지는건지, 내가 주저자가 아니라 고치라고 할 수 없는게 아쉽다.

이 일을 시작으로, Ricardo와 본격적으로 collaboration을 하게됐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연구 아이디어가 많은 친구다. 최근에 같이한 작업한 논문이 리젝되서 실망이 큰 것 같아 안타깝다.

잡담: 종이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짜리몽땅하고 옆으로 푹 퍼진 레터 용지가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미국 생활 만 3년을 채우고 나니 A4 용지가 너무 길고 불안정해보인다. 몇 단어 안 읽은 것 같은데 줄을 바꿔야 되고, 밑으론 왜 이렇게 긴지…

정규직으로 가는 길

원래는 임용이 되는 순간 포스팅할려고 묵혀두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디테일한 부분을 까먹게 되서 일단 올리고 계속 보충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분야마다 요구하는 스펙이 워낙 다르다보니 이런 기록을 남기는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도전이니까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과정에서 얻고 배운것들을 기록해놓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2015년

포닥을 나오자마자 하지 말아야할 짓 중 하나가 임용 지원이다. 초반에 자리 잡을려면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은데, 임용 지원을 시작하면 마음까지 들떠서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1. S여대 화학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서: DFT 방법론 개발, Genetic alogirthm을 활용한 물질 디자인

우리는 너를 원하고 있다!라는 것처럼 보이는 공고가 올라왔다. “계산화학”. 그때는 몰랐다. 나 말고도 계산화학을 하는 사람이 수십명은 더 있다는 것을… 거기다가 소식통에 따르면 실험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는 말까지 있었다. 실험 페이퍼는 없었지만 포닥하는 동안 실험을 조금 배우고 있었던지라, 김칫국을 아주 통째로 들이켰다.

첫 지원, 첫 광탈.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실 수 없게 되어서 유감이라는, 굉장히 짜증나는 이메일을 받았다.

2016년

미국 포닥와서 쓴 첫 논문(J. Phys. Chem. C)이 9월에 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공고는 계속 올라왔고, 논문 추가 없이 총 세군데 어플라이를 하였다.

2. K대 화학과: 기억안남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서: 들뜬상태 금속착화합물, 멀티스케일 바이오시뮬레이션

바이오의료헬스클러스터 분야라 정말 기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때 포닥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 가고 싶었던 참이라, 화학이라는 글자만 보고는 세부분야가 바이오건 뭐건 그냥 질렀다. 연구계획서에 양자화학 시뮬레이션으로 바이오 물질을 다룰 수 있다고 말도 안되는 포장을 하고… (학부 때 저런 개소리했을 떄 교수님 표정을 봤으면서…) 당연하게도 탈락 이메일을 굉장히 빨리 받았다.

그래도 별다른 임용지원 포탈 시스템을 만들어놓지않고, 학과장님께 이메일로 바로 쏘는 시스템이라 편리했다.

3. Y대 화학과: 화학 전분야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리 분별력도 완전히 사라졌었나보다. 대표논문 저거 세 개로 Y대를 지원하다니. 모든 논문의 요약본을 요구해서 서류 준비하는 데 너무 힘들었다. 인터넷으로 접수 마지막 과정에서 “모든 서류를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시오”라고 떴다. 인터넷 접수는 왜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해를 못한 만큼, 학교에서도 왜 이런 놈이 지원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나보다. 훗날 이 자리를 꿰찬 사람의 스펙을 들어보니 탈락 통보조차 하지 않은 교무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4. S대 화학과: 화학 전분야

대표논문: Nat. Commun. [2016],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머신러닝, 태양전지

작성할 서류가 가장 많았던 대학이었던 것 같다. 인적사항 2천자, 학위논문요약 2천자, 지원동기 및 연구계획 2천자, 연구업적 2천자, 본인의 강점 5가지 500자, 강의가능교과목 40자. 내 인적사항을 정말 읽어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하도 머신러닝을 많이 하길래 나도 연구계획서에 머신러닝을 하겠다고 썼다. 해본적도 없으면서 무슨 베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진짜 이건 지금봐도 0점짜리 연구계획서다.

대표논문으로 J. Comput. Chem. [2015] 대신 Nat. Commun. [2016]을 넣었다. 서류에서 하도 떨어지니까 혹시 공저자건 뭐건 네이처면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렀다. 이정도면 광탈당해야 마땅한 것 같다.
당연하게도, 대표논문은 내가 주저자 (1저자 혹인 교신저자)인 논문에서 골라야 한다.

2017년

ACS Phys Young Investigator Award를 수상하였다. ACS니까 공신력도 있고, 포닥들끼리 경쟁한 상이라서 나를 포장하기에 좋은 상이었다. 실적 입력할 때마다 수상실적이 비어있어서 썰렁하던 참에 도움이 되겠다했는데, 시상식은 8월말에 있었던지라 E여대 지원할 때부터 써먹을 수 있었다.

이맘때부터는 미국에 남아야겠다는 마음이 부쩍 많이 들기 시작했다. ACS에선 상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서류도 통과못할 정도면 과연 한국에는 내자리가 있는걸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교수님께도 미국대학에 어플라이할 생각이다고 말씀을 드리고 교수님과 같이 연구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ACS에 낸걸 보완해서 네장짜리 research statement를 작성하고, 한장짜리 teaching statement도 준비해놓았다.

2017년 7월 중순에 논문 두 개를 추가했다. 1저자 하나, 공저자 하나. 특히 내가 1저자 논문이 꽤 임팩트있는 저널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Letters)에 출간되어서많은 도움이 될거라고 형들이 격려해주었다다. 공저자 논문은 이미 많았기 때문에 한 편 더 추가하는 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은 것 같다.

5. K대 화학과: 물리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ACS 상을 받고 난 직후에 올라온 공고라 나름 기대를 했지만 서류 2단계 심사에서 떨어졌다. 아는 형이 K대에서 “실험”물리화학을 찾는다고 하여서, 나 여기서 레이저 실험도 했고 전기화학 실험도 할줄 안다고 열심히 포장을 했지만, 실험논문 paper가 없었던 게 치명타였던 것 같다.

같이 코웍을 많이 한 교수님이 계셔서 그래도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했는데, 그게 오히려 악재였던 것 같다. 코웍을 많이했다는 것은 그만큼 연구분야가 겹친다는 말이니까 대학 입장에선 비슷한 연구하는 사람을 둘이나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원서, 교육계획서, 연구계획서, 학위논문, 대표논문을 각각 5부씩 인쇄해야해서 힘들었다. 다 인쇄하고 나니까 박스 한가득이었다. 날짜가 촉박하여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이 직접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탈락 소식을 듣고나서 더 속상했다.

6. G대: 화학과

대표논문: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지금까지 지원한 대학들 중 연구환경으론 가장 좋아보이는 대학이라 정말 가고 싶었다. 레이저 실험을 같이 할 교수님도 계셔서, 운만 받쳐준다면 좋은 논문을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표논문 선정하는데 뭔가 입맛이 쓰렸다.

연구계획서/교육계획서를 자유형식으로 요구한 덕분에 써 놓은걸 그대로 냈다.

하지만 결과는 입구컷. 동생이랑 뉴욕 여행가는 날 아침에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미국 지원을 결심했던지라, 미국에서 훨씬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7. E여대 과학교육과: 물리화학/유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1. 서류전형

동생과 함께 그랜드캐년가는 버스안에서 형들한테 E여대 과학교육과에 물리화학/유기화학 공고가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학과만 생각했지 과학교육과는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형들의 충고를 따라 일단 내보기로 했다. 워낙 서류에서 광탈을 많이 했던지라, ACS 수상실적, J. Phys. Chem. Lett., J. Phys. Chem. C 등 논문 두 편을 추가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언제 서류전형 통과 발표가 난다고 따로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작년 공고를 보니 대략 언제쯤 발표나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이 되고 눈을 뜨자마자 카톡방을 보니, 같이 지원한 형은 서류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 형이 나보다 실적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광탈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조회를 해보니 합격을 축하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2차 면접 일정이 나왔다. 임용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자는 동생을 깨우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난리를 쳤다. 이제 고작 한 고비 넘었을 뿐인데 마음은 이미 오피스 안에 가 있었다.

2. 면접심사

처음에 온 면접일정 안내문에는 ‘학부 유기화학에서 열역학 법칙을 설명하는 강의 10분 / 연구결과 및 계획 10분’ 발표 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유기화학에서 열역학 법칙? 그럴꺼면 그냥 유기화학 뽑는다고 하지 왜 나한테 저런 짬뽕스러운 걸 시킬까 투덜거리며 도서관에 가서 여러종류의 유기화학 책을 훑어봤다. 물리화학과 유기화학을 짬뽕시킨 스토리를 짜고 나니까, ‘물리화학에서 열역학 법칙’이라고 정정 이메일이 왔다. 스토리 다 만들어놨는데 왜 바꾸냐는 투덜거림이 나왔지만, 다행이라는 마음이 훨씬 컸다.

열역학 법칙 강의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0법칙부터 3법칙까지, 총 네 개의 법칙을 10분 안에 설명하려니까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솔직히 0법칙은 잘 몰랐고, 2법칙은 다양한 베리에이션 중 하나만 알고 있어서 열역학 법칙 네 개를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 흐름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서류접수 때 연구계획서는 2천자로 줄인걸 제출했다. 한글과 영어를 혼용해서 쓰다보니 별 내용 쓰지 않았는데 2천자가 금방찼다. 그래서 내용이 너무 두루뭉술한 것 같아 full research statement를 따로 준비해갔다. 영어로 쓴 걸 그대로 내면 짧은 면접 시간안에 아무도 안 볼것 같아 한글로 번역을 했다.

면접 하루 전날, teaching statement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서류접수 과정에서 teaching statement를 요구하는데 여기는 과학교육과인데도 따로 요구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과학교육과니까 교육철학에 대한 질문이 무조건 나올 것 같아서, 전에 써 놓은 거에다가 강의가능 교과목과 신설교과목을 추가해서 냈다. 나도 영어쓸줄 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건 영어로 써놓은걸 그대로 냈다.

Thermodynamic lecture/연구발표

면접에서 받은 질문들과 나의 답변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 강의경험이 있는가?
    대학 강단에 선 경험은 없다. 하지만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R&E 프로그램 조교로 활동하면서 양자화학의 기본과 프로그램 사용법을 가르쳤다. 또 일반화학 튜터링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학부 학생들에게 일반화학을 2년동안 가르쳐보았다. 조교를 할 때에도 퀴즈만 보고 채점만 하는 수동적인 역할보다는 강의자료를 만들어서 직접 수업을 진행해보았다.
  • 화학과가 아닌 과학교육과에 지원한 이유는?
    교육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를 열어줌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특히 위에서 말한 경험들이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게 했다. R&E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 논문을 작성하였을 때 엄청난 희열을 느꼈고, 일반화학 튜터링 프로그램 학생들이 중간, 기말시험 결과에 행복해 하고 화학과로 진학하는 것을 고려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 또한 일반화학 실험실의 저희반 학생이 어느덧 같은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하는 동료가 되어있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다.
  • 기존 연구결과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대학원 2년차때까지 논문을 쓰지 못했다. 주제도 여러번 바꾸고 방황을 하다보니, 대학원이라는 진로가 내 적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둘 작정을 하고 교수님께 찾아갔는데, 교수님께서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 마음을 다독여 주셨다. 아 선생님이란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한다는 것을 꺠달았다.
  • 계산화학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약간 뜸들였더니 모두 웃으셨다)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고, 흔들리던 저를 바로 잡아준 교수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 리더쉽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는?
  • 실험결과와 시뮬레이션결과가 잘 맞지 않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제까지도 제가 일하다 온 과제가 있는데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웃음) 실험 논문을 다 써서 가지고 와서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달래고 했다. 마치 제가 계산 하청업자인것 처럼. (웃음) 그런데 실제 계산결과와 실험결과는 반대로 나온다. 약간의 설명을 해드리면 (중략). 물론 시뮬레이션의 특성상 실험과 잘 맞는 결과를 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과 실험결과의 불일치는, 모델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다. 양자역학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닌가? 그래서 지금 공동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내가 곧 실험결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게 잘되면 이론모델 개발에 관한 페이퍼도 같이 쓸 수 있다는 당근으로 시간을 좀 벌었다. (웃음)
  • 계산화학이란 어떤 과목인가?
    (교육계획서 가장 밑에 강의가능 교과목을 보통 쓴다. 대부분의 화학과는 계산화학이 다 있는데, 여기는 과교과라서 그런지 계산화학이 없었다. 그래서 계산화학을 신설하겠다고 적어놓았더니 그걸보고 질문하셨다) 계산화학은 물리화학의 한 분야로, 양자화학 또는 고전역학을 바탕으로 하는 컴퓨터 시물레이션을 활용하여 화합물의 물성을 보는 방법론이다. 많은 학생들이 물리화학을 어려워하는게 온통 수식 투성이기 때문이다. 가령 수소의 오비탈만 하더라도 구면좌표계, 적분, 편미분이 등장한다. 당연히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학생들이 직접 자기들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계산화학을 이용한다면 물리화학 전체의 관심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토의를 바탕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겠다고 했는데, 물리화학에서 어떤 토의가 가능한가?
    (교육계획서 제목이 active learning via discussion이어서 이런 질문이 나온 것 같다) 물리화학 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 정답은 하나다. 인문학처럼 너도 맞고 나도 맞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없다. 그래서 대부분 자연과학 수업은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토의가 꼭 정답에 관한 것일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정답에 도달하는 여러가지 길을 토의의 과정을 통해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가령 오늘 시범강의를 한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방법도 교과서마다 달랐다. 엔트로피=# of microstates라는 답은 정해져있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길은 제각각이었다. 학생들은 각자 다른 학문적 배경과 인지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 각각에 알맞은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교수 하나가 정해진 예를 가지고 수업을 하는 것보단 학생들과의 토의를 통해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Start-up fund는 얼마정도?
    (혹시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해서 미리 알아봤는데 카이스트가 대략 1억이라고 했다.) 2-3천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교수님들 놀람) 하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금액이다. 연구실 초반기엔 슈퍼컴퓨팅센터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계산화학의 장점은 컴퓨터와 책상 한 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
  • 오피스 크기는 어느정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글쎄요, 이 방만큼 큰 방을 요구하면 안되겠죠? (웃음) 앞서 말씀드린대로 책상 하나면 된다. 학생들과 함께 방을 나눠써도 괜찮다. (그건 학생들이 싫어합니다) 아, 그건 생각이 짧았다. 일반 연구실의 실험실 아닌 오피스 파트 크기정도면 충분하다.
  • Fund는 어떻게 확보할건가?
    삼성종합기술원 배터리 그룹과의 공동연구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쪽과 다시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컴퓨터 자원은 키스티에서 확보할 생각이고, 태양전지 페이퍼가 마무리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한화 기업과제 공모에도 지원할 생각이다.
    (사실 이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너무 두루뭉술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답변을 한 것 같다.)

3. 총장면접

내가 몇 순위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들러리라도 열심히 준비하면 뒤집을 수 있고, 내가 1순위라면 그것을 확고하게 굳혀야겠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열심히 준비했다.

20분간 총장님이랑 이야기하게 될텐데 내가 아무것도 준비해가지 않으면 굉장히 상투적인 대화가 될 것 같았다. 자기소개 해봐라, 어떤 연구를 하는가 등 총장님의 질문에 내가 끌려다녀서 내가 원하는 말을 다 못하고 나올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한장짜리 personal statement를 준비해서 드리면, 아무래도 그걸 위주로 질문을 하게 될테고 나를 좀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외/국내 가릴 것 없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구, 교육, 그리고 서비스(봉사)였다. 지금 보니까 당연한 말 같은데, 처음에는 뭘 어떻게 적어야할지 조금 난감했다.

Personal Statement

Research Interest, Fund for Research, Education, Service 네 개의 주제로 personal statement 작성했다. 굳이 연구를 두 개의 주제 Interest와 Fund로 나눈 것은, 연구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ACS 상 받은걸 강조하고 싶었고, 대학에서 fund를 어떻게 수주해올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E여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총장님 인사말, 교훈, 인재상 등 모든 걸 싹 다 인쇄해서 읽어보았다. 이 학교 목표에 맞는 연구를 하겠다고 해야 좋아할 것이고, 이 학교 교훈에 맞는 인재를 키우겠다고 해야 좋아할테니, 어떤 학교인지부터 알아야했다.

  • Research Interest: 총장님 인사말에서 ‘4차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란 키워드가 눈에 들어와서 저 개념들을 중심으로 Research Interest를 포장했다. 이미 써 놓은 것이 것에 machine learning 내용이 좀 있어서 다행히 쉽게 포장이 가능했다.
  • Fund for Research: 사실 펀드 계획을 세워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향후 10년 펀딩 계획을 세워놓는다고 저대로 될리가… 그것은 나도 알고 보직교수님들도 알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생각을 해봤고, 이런 도전을 할 것이란걸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연구재단, 삼성종합기술원, LG화학 등을 돌아보며 신임교원이 지원할 만한 과제들을 추렸다. 조교수로 지내게 될 5년을 초기, 부교수로 승진하게 될 이후를 중장기로 보고 펀딩 source를 나누었다.
    이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어느 저널에 몇 편의 논문을 낼 것인지도 용감하게 말했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현실을 모르는 풋내기처럼 보일것 같아서 재임용 심사 기준을 참고했다. 운이 좋게도 재임용 심사기준표를 찾을 수 있었고, 대학에서 교수에게 어떤 것을 원하는지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 Education: E여대 인재상인 THE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썼다. T (Telos, 그리스어 목적), H (Hokma, 히브리어 지혜), E (Experience, 영어 경험). 이것 자체는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이걸 해석해서 다섯가지 핵심영량을 써 놓아서, 그걸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토의중심의 지식탐구, 창의적인 학술활동, 다학제 융합연구, 건전한 인격을 가진 교육자를 키우겠다고 썼다.
  • Service: 이게 사실 제일 난감했다. 대학교수가 연구하고 교육하면 됐지, 어떤 봉사활동을 해야되지? 불우이웃돕기는 아닐테고. 그래서 외국대학에서 작성한 조교수를 위한 조언 등을 검색해서 읽어봤다. 그 중에서 Successful Faculty Performance in Teaching Research and Original Work and Service 이 문서가 Service뿐만이 아니라 Research, Teaching까지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교육봉사, 공동연구, 멘토링, 학술협력으로 나눠서 정리했다.

예상질문 리스트

이 외에도 나올만한 질문거리를 리스트로 만들어서 정리했다.

일단 과학교육과니까 교육철학에 관한 것을 불어볼 것 같았다. 막연하게만 떠오르고 잘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연구실 누나가 알려준 장하석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가 큰 도움이 됐다.

그 다음으론, 교육 목표에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개척자를 양성한다는 말이 있어서 성차별, 성평등 관련 부분에 답변 준비를 열심히 했다. 아무래도 여대니까 저런  부분의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올 것 같았다. 친구가 추천해준 손아람 작가의 세바시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성차별의 구조적 문제와 거기서 파생되는 역차별 문제를 비교적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외에는, 연구분야 소개, 연구계획 개요, 연구계획 세부, 연구계획 관련 산업 현황, 인공지능 설명, 4차산업시대 사람의 역할,  공동연구하고 싶은 교수님, 대안교육, 펀딩계획 세부, 논문계획 세부, 교육철학, 학교학과발전 방안, 공개강의, 학생지도 방법, 봉사활동, 과학도서, 자기소개, 장점, 단점, 조기졸업한 이유, 감명 깊게 읽은 책, 리더십 사례, 취미, 구성원간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 과학교육과에 대한 정보, 큰 규모의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는 방안, 과학교육과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E여대에 지원한 이유, 과학교육과 지원한 이유, 마지막 한마디, 기독교 신앙, 성적관리, 롤모델, 여학생, 힘들었던 일, 한국에 지원하는 이유, ACS 상은 어떤것인지, 연구의 좀 더 큰 그림, 경력 3년동안 지원한 곳은 없었는지, 과학교육과 진선미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문제,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 자율학기제 등에 대한 답을 준비했다.

실전

전날 친구집에서 잘 준비를 하는데 학과장 교수님께 카톡이 왔다. 한국에 왔는지 체크하시고, 내일 면접 시간에 늦지않게 오라고 하셨다. 내 합격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저런 안부 카톡에 답장보내는 것도 엄청 신경이 쓰였다. 너무 바로 읽으면 폰 붙잡고 사는 놈 같고, 답장이 너무 늦으면 연락 잘 안되는 답답한 놈 같고.

당일 친구와 함께 일찍가서 면접장소를 확인하고 나오는데 총장님을 보았다.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셨다. 하지만 당황해서 인사는 하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훗날 이게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수 많은 면접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겠지…

까페에서 대기를 하다가 3시 20분쯤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나 빼고 전부 여자가 우루루 타니까, 내가 꼭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아서 위화감이 들었다. 까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긴 했는데 거긴 공간도 넓고 친구랑 함께 있어서 그런 기분이 덜 들었던 것 같다.

면접 장소엔 학과장 교수님이 미리 와 계셨다. 내가 과학교육과 첫 번째 면접이라서 학과장님도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런저런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내 차례가 되어서 면접에 들어갔다.

실제 면접장 분위기는 굉장히 차가웠다. 총 여섯 분이 계셨다. 총장님이 가운데 계시고, 오른쪽에 교무처장님, 학생처장님이, 왼쪽에는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교수님, 총무처장님, 과학교육과 학과장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총장님의 맞은 편에 앉았다.
들어가서 발표자료를 좀 나눠드리려고 한다고 하면, 당연히 어디 한 번 봅시다라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짜르셔서 조금 당황했다. 옆에 계시는 분께 자료를 드리고 자리에 앉아서 면접을 시작했다.

  • 자신의 연구분야 간단한 소개
    후배가 코치해준 대로, 나와 관련된 서류들을 검토하시는 동안 나는 계속 주절거렸다.
  • 훌륭한 과학 선생님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다행히 첫 질문은 예상했던 질문이라 나름 수월하게 대답했다.
    깊이있는 전문지식, 폭 넓은 교양지식, 학생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
    지금 생각으론 4차산업시대에 연관지어서 통섭적인 사고 같은걸 추가할걸이란 아쉬움이 든다.
  • 전문지식 전달을 꼭 교사가 해야하는가?
    첫 번째 답변의 전문지식 부분에 대해서 다시 물으셨다. 보통 이런 면접은 허례허식인 경우가 많다고 들어서, 한 번의 질답이 오가면 끝일 줄 알았는데 다시 물어보셔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연구실 사람들과 면접 준비를 하면서 나온 질문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이어서 크게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 창의성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두 번째,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 답변에 대한 이어지는 질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드니까 오히려 조금 마음이 편했다. 나도 면접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심층면접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장하석 교수님 강의를 본 것이 답변에 큰 도움이 됐다.
  • 이후에 추가로 코멘트를 하시고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 과학교육과에 지원한 이유
    이건 2차 면접때도 나온 질문이라 비슷한 답변을 했다.
  • 여성 과학자가 많이 부족한데 대처 방안은?
    이것도 대충 생각해본 질문이라 준비한 대로 대답을 했다.
  • 추가로 몇 개 더 물으셨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총장님 질문이 끝나고 교무처장님의 질문 순서로 넘어갔다. (사실 이때는 누가 누군지 몰랐다. 지금와서 찾아보니 교무처장님이셨다)

  • 삶에서 실패한 경험?
    이것도 2차 면접과 같은 질문.
  • 스펙이 좋은 편이라 화학과를 지원해도 될 것 같은데, TO나면 옮기고 싶은가?
    아닙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주절주절.
  • 취미는? 독서 같은 학구적인 것은 전부 빼고.
    수영을 좋아한다고 했다. 최소한 수영하는 동안은 연구생각이 안나서 행복하다고 했더니, 취미생활도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 하는 수단이냐고 하셨다. 너무 틀에 박힌 대답인가 싶어서 식은 땀이 났다. 차라리 솔직하게 미드보는 거 좋아한다고 할껄…
  • 게임을 하는지?
    이건 정말 왜 물어보셨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 한다고 답하고, 중독은 아니라는 사족을 붙였다.

대략 15-20분 정도 면접 본 것 같다. 총장님 질문을 저렇게 간단하게 복기했지만, 실제로는 앞뒤에 살을 많이 붙여서 질문하셨다. 이런게 내공인가 싶었다. 분위기가 굉장히 딱딱해서 준비해 간 마지막 한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서 빠져나왔다. 친구가 적어준, 내 마음에 정말 쏙 드는 킬링멘트였는데… 억지로라도 타이밍을 만들어서 말하고 나올 걸 그랬다.

4. 결과

같이 최종면접에 올라간 친구가 임용되었다.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것이 사라져서 너무 속상했다.면접장소 미리 확인하러 갔다가 총장님 만났을 때 인사를 안한게 문제인걸까, 만 29세인데 이루어 놓은게 많네요라는 코멘트에 만 30세입니다라고 말대꾸를 한게 문제였을까. 너무 틀에 박힌 정형화된 내 답변들이 문제였을까. 그 이유만이라도 알려주면 좋을텐데… 가족들이 실망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가족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주어서 정신줄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꼭 더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서 나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8. J대 화학교육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내가 언제부터 교육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여대 과교과에 이어 2연속 사범대에 지원했다. 여기는 분야가 “이론 및 계산화학”이라고 내 전공을 콕 찝어가지고 나와서 괜히 더 마음이 설렜다.

E여대 면접을 마치고 친구들과 진탕 술을 먹고 나서 서류를 준비했다. 다행히 교원공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실적 입력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 양자방 연구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쇄하는 것까지 무난했다. 다만, 논문의 질을 JCR 퍼센테이지 기준으로 10 % 안이면 S등급이라고 300 %, 그 밖은 A등급으로 100 %만 인정해주는 식으로 평가한다. Impact factor로 논문을 평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다가 마음대로 10 % 안이면 S등급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더 최악이었다.

지원접수증을 보니 006-01-003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앞의 세자리는 대학코드, 중간의 두자리는 학과, 마지막 세자리는 지원자 숫자인거 같다. 사범대학-화학교육과-3번째지원자란 의미로 추정된다. 인터넷으로 접수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류접수 마감 이틀전에 접수한 내가 거의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1. 기초심사

합격발표가 나서 면접일정을 보려고 했더니 전공심사가 따로 있었다. 강원대도 기초심사, 전공심사로 나누어서 하는걸로 보아 두단계 서류전형 심사는 국립대의 특징인가보다. 기초심사는 지원자격 정도만 검토하는 것이라 통과한 것 같다.

2. 전공 1단계 심사

예고한 것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12월 13일 오후 6시, 미국시간으로 13일 오전 4시에 발표가 났다. 한번 느껴본 기분이라 그런지, 합격의 기쁨이나 짜릿함은 솔직히 처음에 비해 덜했다. 왠지 E여대가 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서, 이건 무시할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 말도 안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들은 결과, 면접에는 웬만하면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3. 전공 2단계 심사 (면접)

우여곡절 끝에 J대에 도착을 했다. 학과사무실이 대기장소라 들어갔더니 다른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지원자 둘이 한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숨막히는 일인지는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공개강의: 열역학 제 2법칙

내가 먼저 공개강의를 했다. 심사위원은 학과교수님 네 분 + 사범대 학장님이 계셨다. 주제는 열역학 제 2법칙. E여대에서 열역학 법칙 10분 발표한 것에서 인트로와 2법칙 부분을 따왔다. 피피티의 골격이 갖추어져 있으니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가 E여대의 색깔과 J대의 색깔이 굉장히 비슷했다.

열역학 법칙을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다보니까, 더 이상 그림과 스킴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들이 생겼다. 가령, Carnot cycle의 효율, 다양한 과정의 엔트로피 변화 유도, Clausius inequality 등을 유도하는 부분은 수식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아는 형님이 “열역학이라면 피피티 쓰지말고 서판을 시도해봐라. 전부 피피티 쓰기 때문에 칠판에 아무것도 보지않고 수식 적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일수가 있다”라는 조언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Const P, Const S, Const V, Const Q 네 가지 상태에서의 Entropy 변화를 칠판에 유도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부분이 이번 발표의 킬링 컨텐츠가 아니었나 싶다.

질문

생각보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많이 쏟아져서 당황했다.

  • 열역학 제 2법칙을 한글로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 엔트로피와 Gibbs Free energy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 G=H-TS식을 실제 화학반응 예를 들어 설명해줄 수 있나?
  • 엔트로피의 statistical mechanics 정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이외에도 질문들이 더 많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공세미나

이 부분은 별로 흥미가 없으신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편하게 발표한 것 같다.

실제 세미나가 끝난 후에 연구에 관한 질문은 한 두개 정도 나왔다. Two-photon absorption 계산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polymer의 binding 에너지는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이 가능한가 정도.

나의 강점이랍시고 실험과 계산을 모두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했는데, 계산만 해도 논문은 쓸 수 있는지가 궁금하신 것 같았다. 아주 간단한 실험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이라, 레이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는 아닌것으로 보였다. 역시 대학마다 원하는 인재가 있고, 그것에 맞춰서 피피티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나머지는 ‘사범대의 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주로 이야기하시면서, 그래도 우리과에 오셔서 연구하실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다양한 표현으로 바꿔가면서 물어보셨다.

학과장 개별미팅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조교님이 잠깐 남아있다가 학과장님과 잠깐 만나고 가시라고 했다. 내가 E여대에 지원한 것을 알고 계셨다. 복잡하고 긴 이야기 끝에, 나는 멍청하게도 애매한 답변을 하고 말았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2018년

한국 대학은 최근 3년 실적을 보는 곳이 많다. 그래서 14년 연말에 나온 JCC 논문을 비롯하여 수많은 논문들이 짤려 나갔다. 거기다가 2015년은 포닥와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던 때라 논문도 없어서, 2018년 초반 임용지원에는 3년 실적이라고 해도 2년 실적과 별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다. 실적에서 제외되는 논문과 비슷한 퀄리티의 논문을 두 편 이상 써서 논문 숫자를 늘리거나, 한 편을 쓸거면 퀄리티를 반드시 높여야만 하는 한 해라 마음의 부담감이 컸다.

9. B대 화학과: 물리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이례적으로 굉장히 빠른 타이밍에 ‘물리화학’공고가 올라왔다. 계산화학 분야를 뽑을거라는 정보를 듣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나마 예전에는 논문 숫자라도 많았는데, 이제는 다 잘려나가서 실적란이 굉장히 휑했다. 그렇지만 작년 연말의 2연타 때문인지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평온한 마음가짐이라, 광탈 당해도 큰 충격이나 상처는 없었다.

*C대 화학과: 물리화학

3년 실적 주저자 6편. (IF 10이상일 경우 3편, JCR 5%내일 경우 3편으로 인정)

지원요건이 되지 않아 접수조차 못했다.

10. I대 화학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1. 서류전형

J대 화교과가 계산화학을 특정해서 뽑았을 때 상당히 큰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했다. 6개월 사이에 빅페이퍼를 쓴 사람이 3명 이상 있지 않다면 나에게 면접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2. 면접심사

면접일 10일 전 쯤에 결과를 통보 받았다. 연구업적 영어로 20분, 연구계획 한글로 10분, 질의응답 한글/영어 섞어서 20분. 스카이프로 면접이 가능하다고 한 첫 번째 대학이었지만, 스카이프’도’ 가능하다는 것과 스카이프’만’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큰 차이가 있기에 비행기를 끊었다. 아무래도 직접 면대면으로 본 사람에게 더 큰 호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삯 아끼자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화학과 면접은 처음이었는데, 사범대랑 달리 미니렉처를 요구하지 않았다. 면접 본 세 곳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조금씩 달라서 만들어놓은 피피티 자료들을 조금씩은 손봐야해서 힘들었다. 10분짜리를 20분으로 늘리고, 한글을 영어로 바꿔야하는 등 소소하게 손 갈 일이 많았다.

면접자들끼리 만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분리를 한다. 당연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조교분들이 노트북/usb를 가져가서 레이저 포인터까지 다 준비를 해주신다. 말끝마다 박사님이란 호칭과 함께 극존칭을 사용하셔서 몸둘바를 몰랐다.

이때까지 면접 본 세 곳의 대학 중 유일하게 학과 면접에서 항공료를 보조해주는 학교다. 금액은 아직 안 받아서 모르겠지만, 50-100만원 정도가 아닐까 싶다. (55만원을 받았다. 미주 50만원+국내경비 5만원. 아시아권은 20만원을 보조해준다.) 이 부분이 I대학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것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금액을 떠나서 아직 학교 식구도 아닌 지원자를 배려해주는 학교라니. 이런 부분이 많이 알려진다면 학교지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홍보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계획 발표는 Singlet fission/컴퓨터 활용한 분자 디자인/reaction mechanism 세 개의 주제에 3분씩 할당했다. 앞에 두 개는 원래 research statement에 있는 것이었지만, 반응 경로 연구는 학과 교수님들의 연구 프로필을 보고 추가한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 랩의 주력 연구 분야라서 대학원생들 피피티, 논문 결과물들이 화려해서 저 부분도 나름 알차게 채웠고, 이 부분이 킬링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문

면접은 생각보다 평이했다. 50대 이하의 젊은 교수님들의 질문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물리화학 교수님이 질문을 주도하셨다.

  • CASPT2로 계산하기엔 분자가 꽤 커보이는데, 얼마정도 걸리나
  • CAS, RAS 차이점
  • 공저자 논문이 많은데 어떤 기여를 한 것인지
  • 최근 3년 publication 숫자가 적은 이유
  •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
  • 펀딩 수주 계획
  • 펀딩을 직접 수주해봤는지
  • Leader로 연구를 이끌어본 경험이 있는지
  • 스트레스 푸는 방법
  • 학부 3년 졸업의 장단점
  • (영어질문) 학부생들을 대학원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법

연구 성과를 포함해서, 영어 소통 능력, 사교성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하는 것 같았다.

영어 질문이 있을 것 같아서 연구분야 소개/자기소개/지원동기/미시건소개/대학원유인책/학과 사업에 기여할수있는 부분/취미/펀딩수주계획/공동연구계획/학생관리/초기정착계획 등을 준비했다. 다행히 저 중에 하나가 걸려서 영어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패스했다.

3. 총장면접

발표 3일전 쯤, 여비 지원 서류와 함께 총장면접 자료 준비를 알리는 이메일이 왔다. 여비는 학과면접 때와 같은 금액이었다. 총장면접에 자료를 준비해오라는 경우는 다른 학교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질문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나의 연구와 바이오를 어떻게 접목 시킬 수 있는가. 2. 통일 후 통합에 학교와 나의 연구가 기여할 수 있는 방안, 3.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 주제. 총장님의 인터뷰를 보니 바이오와 4차산업혁명, 중국을 아주 중요시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그런 부분에 답을 준비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통일, 일대일로와 같은 단어가 나오니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지인들의 기발한 아이디어 개마고원 태양전지, 탄소섬유 초장거리 철도 덕분에 각 주제에 대해서 두장씩 준비했다. 친구들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는데, 이것이 다 국가과제를 따기 위한 연습이다라는 말을 들으니 좀 이해가 되었다.

본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발표자료를 보고 있는데, 정장을 입은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 본부로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저 사람들이 나머지 후보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학과면접에서는 지원자들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엄청 배려를 해주셨는데, 본부면접은 그냥 한 방에서 같이 대기 시키는 바람에 굉장히 힘들었다. 통성명이라도 하고 이야기하면서 긴장을 풀면 좋았을텐데. 형들은 빨리 이름 알아와서 구글 스칼라 뒤지라고 했지만, 너무 긴장되서 그런 여유까지 부리진 못했다.

총장면접은 접수번호 순서대로 들어갔다. 사실 학교마다 다를 가능성이 높고 학교에서도 접수번호 순서대로라고 말하는 곳이 많지만, 나의 경험과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총장면접 들어가는 순서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추가보완 필요) 특히 면접 시간을 보면 내가 들러리인지, 가능성이 높은 candidate인지 알 수가 있다. 당연하게도 들러리한테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질문만한다. 그러다보니 면접시간도 일반적으로 짧다.

면접에는 총 네 분이 들어오셨다. 총장님, 자연대학장님을 제외하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부총장님이 계셨던 것 같기도 하고… 질문은 주로 한 분 (내가 부총장님으로 기억하는 교수님)이 하셨다. 총장님은 중간 중간 영어와 한글 질문을 번갈아가면서 하셨고, 자연대 학장님과 나머지 한 분은 거의 마지막 쯤에 질문 한개씩 하셨다.

질문

  • 자기소개-강점위주 / 지원동기 / 임용후 하고 싶은 연구와 교육방법
  • 3년 논문 숫자가 적은 이유 — 총장님이 자기소개서는 22편이라고 되어있는데 왜 서류에는 4편만 올라와있냐고 하셔서 학교가 최근 3년 논문 실적을 요구한다고 했더니, 부총장님께 “이런 부분은 고쳐야하지 않나요? 전체 이력이 중요하죠”라고 하셨다.
  • GRT 신청할 의향이 있는지 — GRT는 테뉴어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대신에 통과하면 20-30% 많은 연봉과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제도.
  • 미국에 지원하지 않고 한국에 지원한 이유 — 총장님이 조금 낮은 미국대학에서 시작해서 top 20를 목표로 미국에 남는것이 커리어에는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을 하셨다.
  • (영어질문) 포닥을 보통 3년하는데, 3년 반 하게 된 이유
  • 강의 경험이 있는지
  •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 임용이 된다면 발표 자료에 쓴 연구를 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것인지
  • 논문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대 SQ limit이 45인데, 실제론 얼마정도되는지? — 사실 여기서 Shockley-Queisser limit을 들을거라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SQ limit이란 말을 들었을 때 한 5초 벙쪘다. 태양전지에 상당한 조예가 있으신 분 같았다.
  • 내가 낸 논문들이 impact factor — 총장님께서 JACS의 IF를 묻는줄 알고 13정도라고 대답했는데, 부총장(님으로 추정되는 교수님)께서 pchem 눈문이 그렇게 높다고요라고 반문하셔서 좀 놀랐다. 부총장님이 pchem 분야 논문의 IF를 대략이나마 알고 계신다는 것이 신기했다.
  • 바로 복기를 하지 않아 까먹은게 좀 있는 것 같다.

잡담: 교수 위의 과학자

UM 화학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아니 UM 전체라고 해도 되겠다. 바로 Melanie Sanford 교수님. 연구를 잘하시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강의까지 잘하시는 줄은 몰랐다. 타과 학생들이 Sanford 교수님의 유기금속화학 수업 들으러 화학과에 올 정도라고 하니… (유기금속화학은 카이스트에서 500번대, 대학원 과목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게 전부 칭찬 일색이다. “화학적 직관이 엄청 좋아서 실험을 안해도 결과를 쉽게 예측한다”, “논문을 이해하기 쉽게 잘 쓴다”, “말을 엄청나게 빨리하는데 논리정연하다” 등등… 과학자가 들을 수 있는 찬사는 혼자 다 차지하신 것 같다. 보통 연구력이 높은 교수님들은 강의력이 조금 부족하기 마련인데, 이 교수님은 완전체인 것 같다.

당연히 다른 큰 학교에서 스카웃 제의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UM은 간판스타를 지키기 위해 역오퍼를 넣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지난 번에 들은 것은 NMR 기계 4대 였다. 화학과 전체를 위한 게 아니라 Sanford 교수님 실험실만 사용하는 것으로… (카이스트 화학과에 2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최근에 학교에서 제시한 역오퍼는, 논문/그랜트 작성을 전담할 새끼교수를 학교가 대신 8만불 주고 고용해주는 것이다. Sanford 교수님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제시하면되는 교수 위의 과학자가 된 것 같다.

미드: The Office

Pennsylvania 주의 작은 도시 Scranton에 있는 paper company의 한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직장인들의 이야기. 직장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기대하고 1화를 봤는데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국 시트콤이라면 이런 맛이라는 것을 1화부터 강력하게 보여준다. 영국 드라마 리메이크한거거든할 수도 있겠지만, 영국판 Office를 3화까지 본 내 느낌에는 미국판이 좀 더 활발하고 똘기 넘치는 느낌이다.

다소 우스꽝스럽고 눈치없는 상사 Michael Scott. 뭔 저런 사람이 있나 싶은데,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능력은 없지만 직원들과 회사에 대한 애착은 엄청나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할 때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 또 하나의 가족. 직원을 해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엄청 괴로워하고, 직원들 일이라면 자기가 먼저 나선다. 무엇보다도 매사에 너무나 심하게 긍정적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삶에서 저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정말 능력인 것 같다. 아무튼, 내가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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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앵글이 조금 독특하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목적으로 사무실을 촬영하는 설정이라,  약간 아마추어스러운 느낌도 나지만 그 특유의 느낌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중간 중간 인터뷰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큰 흐름의 스토리가 있다면 속마음을 다 말해주는 것이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겠지만, 한 편 한 편이 워낙 개판이다보니 오히려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총 9시즌이 있는데, 마이클은 시즌7을 끝으로 하차한다. 이때부터 재미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시즌8은 정말 봐주기 어렵다.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닌, 그냥 병맛쇼. 그나마 마지막 시즌에는 여러 가지 얽히고 섥힌 일들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는 맛이 있다. 마지막 에피도스는 극 안에서의 다큐멘터리 촬영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쫑파티를 하는 장면으로, 시청자가 보는 드라마의 피날레와 극중 캐릭터들의 쫑파티가 겹쳐져서 마치 함께 마무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즌8에서의 모든 분노가 마지막 장면에서 다 녹는다.

Pam-Jim 커플의 이야기는 병맛 막장 시트콤 Office에 한 줄기 달달한 빛이다. 이 커플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주제는 Jim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팸과 주말부부가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이다. 가족들에게 좀 더 부유함을 주고 싶고 더 큰 도시에서 자기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Jim, 평범한 회사원이라도 가족이 항상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Pam. 나는 이때까지 Jim의 논리로 이별을 택한 것은 너이고 이별로 상처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반대일 수도 있겠다.

저런걸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종이를 파는 일 자체는 매력이 정말 없어보이는데, 직원들이 자기 직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모교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것과 비슷한 거겠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자부심과 그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 외로운 세상에서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학교 후드 하나 더 사야지

영어공부하기에도 꽤 좋은 편이다. 배우들이 중서부-북동부 출신이 많다보니, 흔히 말하는 미국 표준어에 가장 가까운 발음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인터뷰 장면들에서는 독백으로 말하기 때문에 오디오가 물리지도 않는다.

미국 생활 첫 해의 우울함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을 준 How I met your mother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재미있다. 최근 일이 끝없이 밀려와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Office 볼 때 만큼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Scranton의 작은 회사로 떠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