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화학 분야를 연구하는 친한 형이 코드 브레이커란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여 이번 설 명절에 읽어보았다. (윌라 만만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개발한 공로로 202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버클리 대학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어린 시절 ‘이중나선’을 읽으며 자연의 신비를 파헤치는 자연과학의 매력에 매료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크리스퍼를 개발하여 노벨상을 수상하고 그 기술로 코로나-19 진단과 치료에 관련된 연구를 수행한 최근의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다우드나 교수가 왓슨의 ‘이중나선’을 읽으며 생명과학의 신비를 밝혀내겠다는 꿈을 키웠다. 나는 어떤 자연현상을 공부하고 싶어서 교수가 된 것일까. 학부 수업 때 들은 양자화학이 재미있어서 이 길을 택했지만, 명확한 문제의식이나 이해하고 싶은 자연현상은 없었던 것 같다. 교수가 된지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갈피를 잡아가는 것 같다. 보다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 학생 때에 비해 연구도 더 재미있고 과제 제안서를 쓰는 것도 덜 힘든 것 같다. 연구실 학생들에게 본인들이 대학원 과정동안 연구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해야겠다.
다우드나 교수가 버클리에 부임한 이후 하버드 대학의 장펑 교수와의 특허 논쟁에 관한 내용은 한편의 추리소설 같았다. 논문의 문장, 연구 노트 및 세미나 발표자료로부터 해당 기술에 대한 원천지식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는 장면은 정말 흥미로웠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다시 서재로 가서 읽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상대보다 먼저 본인의 성과를 발표하기 위해 대학원생들과 동료 연구자들을 독려하는 동시에 저널의 편집자들을 강하게 압박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과학자라면 당연히 본인의 연구 결과를 Nature, Science, Cell과 같은 최고의 저널에 발표하고 싶고, 저널 편집자 입장에서도 대가의 논문을 게재할 유인이 충분하다. 그러다보니 저널 편집자들과 대가들 사이에는 모종의 협력 관계도 있다고 한다. 나만 모르는 이야기
대학은 지식의 상아탑으로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고, 기업은 기초과학에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라고 많이 생각한다. 다우드나 교수는 본인 연구실에서 개발한 크리스퍼 기술을 통해 유전병과 같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 싶어했다. 오늘날 많은 대학이 교수들에게 본인들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창업을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교수들의 전문성이란 것이 당연하게도 연구 과제의 성과물에 기반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연구재단과 같은 단체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성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여야 할까, 아니면 연구 결과를 만든 개발자들에게 돌아가야할까. 어려운 문제이다.
책의 중반부는 크리스퍼 기술로 유전자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거의 철학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윤리학자들은 유전자 편집을 두고 인간이 신의 흉내를 내려고 한다는 다소 철학적인 비판에서부터 수십억년간 서서히 작동한 진화 메커니즘을 유전자 편집이라는 기술로 순식간에 달성할 경우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 치료의 목적으로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에는 크게 저항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전 형질을 편집하는 생식 편집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클 것이다. 크리스퍼 기술은 흡사 마트에서 장을 보듯 후손에게 물려줄 유전자를 고르도록 해줄지도 모른다. 이제 빈부격차가 유전자에 각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가 앞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질병의 치료, 유전 형질의 개선, 예방에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해진다.
책의 마지막은 코비드19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들끼리 특허가지고 싸우고 논문가지고 싸우다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의 등장에 인간 모두가 힘을 합쳐 극복해 나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각 장의 첫 페이지에는 해당 장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과 연관된 역사적 인물의 말이 소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을 옮겨적으며 독서일기를 마치고자 한다.
“과학자가 자연을 연구하는 것은 그것이 유용해서가 아니라 그안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자가 희열을 느끼는 것은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_앙리 푸앵카레, 과학과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