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Multi-ET in iSF

미시건에서의 3년을 투자한 논문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태양전지라는 다소 새로운 시스템을 레이저 실험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하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고통의 시작

미국 도착하고 3개월만에 해본 레이저 실험에서 꽤 괜찮은 preliminary data를 얻었다. 노이즈가 심해서 논문에 쓸 수 있는 figure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뭔가를 보았고, 굉장히 고무적인 결과였다. 폴 형님도 데이터를 보고선, 다전자 전이를 실험으로 직접 관찰하지 않고 kinetic 모델을 이용해서 증명한 결과만으로도 Science에 나왔다면서 엄청 흥분했었다. 포닥 1년만에 대박치고 금의환향하는 것인가하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레이저 실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좀 더 퀄리티가 좋은 figure를 얻기 위해 새로 실험을 해보려고 하니, 기온이 높아서 파워가 full로 올라가질 않고, alignment가 맞지 않아서 데이터가 안뜨고, 파장 조절이 안되고… 하나를 고치면 하나가 고장나고, 온갖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관련 분야 논문은 하루가 멀다하고 좋은 저널에 출간되고, 사람들이 점점 다전자 전이를 보는 것에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니까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Citation alert에 singlet fission이란 글자만 보여도 숨이 막혔다. 대학원동안 해 온 연구는 남에게 scoop당할 염려가 없어서 한껏 묵히고 삭혀서 출판했는데, 이 field는 완전히 전쟁이었다. 이 논문이 어디 출판되느냐에 따라 내 커리어가 완전히 바뀔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 것 같다. 처음 1년차 때야 이거 망해도 다른 일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이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들었고 이 일에 내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첫 번째 레이저 실험

논문 윤곽을 대충 그려보니, 총 두 개의 레이저 실험이 필요했다. 첫 번째 레이저 실험은 이전의 논문 결과 재현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이 재현이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았다. 우리 연구실에서 발표한 논문인데다가, 그 논문의 2저자인 애가 실험을 도와줬는데도 이렇게 재현하기가 어렵다니. 실험이란 방법론에 회의감마저 들었다. 같은 실험기구인데 오늘 결과와 어제의 결과가 다르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레이저가 어느 순간 잘 작동하면 그 날 하루안에 논문에 들어갈 모든 실험을 다 끝내야했다. 실험 기구를 하루종일 써야하니까 주로 주말에 실험을 하게 됐고, 이 첫번째 레이저 실험을 끝내는데만 거의 1년이 걸렸다.

두 번째 레이저 실험

두 번째 레이저 실험의 결과가 논문 내용 전개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말인 즉슥, 두 번째 레이저 실험은 처음의 것보다 더 정교한 실험이고, 셋팅할 것이 더 많고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 실험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같이 일한 애들도 이 분야의 정통한 전문가는 아니어서 alignment를 하는 것이 상당히 주먹구구식이었다. 조작할 수 있는 변수가 한 두개가 아닌 상황에서 trial-and-error 방식으로 hot spot을 찾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는데, 근 1년이 지나갈 때쯤 그 기적이 찾아왔다. 오후 4-5시 쯤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아예 밤샐 각오를 하고 간식거리와 커피, 핫식스를 사왔다. 최대한 천천히 레이저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나씩 데이터를 뽑다보니, 새벽 3시를 넘겼다. 사실 이 때 데이터를 더 뽑았으면 지금의 communication에 연달아서 full paper 하나 더 쓸수도 있었을 텐데, 갑자기 레이저님이 맛가셨다.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은 피한 경우. 침대에 누웠지만, 핫식스 때문인지 실험결과 때문인지 심장이 쿵쾅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합성

또 다른 문제는 시약의 부족함이었다. 시중에 파는 시약이 아니라서 합성 그룹에서 얻어써야하는 처지였다. 그러다보니 실험을 잘 디자인해서 시약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같이 실험하는 애들이 시약을 실수로 흘리고,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폐수통에 버릴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하루는 폴 형에게 시약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렸더니, 나한테 합성 procedure가 나와있으면 너가 하면 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해서 그 이후로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 결국은 추가 실험이 더 필요하여 결국 합성그룹 앞에서 세미나를 하고 스페인에서 시약을 공수해왔다.

tail -f

이전 나의 계산 논문들이 실험 결과를 supporting하는 수준 혹은 trend를 보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논문은 실험결과에 직접 매칭해서 해석해야되는 논문이라, 계산-실험간의 정합성이 굉장히 중요했다. Active space 계산이라 빨리 되지도 않아서 몇날 며칠을 기다려야했는데, 혹시 실험결과와 다른 데이터를 주면 어떻게해야하나 초조했다. 집에 와서도 tail -f 를 쳐놓고 아웃풋이 한 줄 한 줄 찍히는 걸 보고 기다렸다.

No matter who you are, I will find you.

JACS에 submit한지 3주만에 리비전이 왔다. 처음에는 두 명의 reviewer로부터 comment가 왔다. 둘다 major revision을 요구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질문의 예리함이 떨어져고, 무엇보다도 revision 온 것 자체가 어느정도는 accept해줄 마음이 있단 뜻이었기에 조금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식 site에 등록되지 않은 세 번째 reviewer로부터 무려 13개의 comment가 추가로 왔다. 이 reviewer가 정말 이 분야의 독한 전문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 분야에서는 비교적 뉴비에 해당하는 폴 형님과 흑형님을 상대로 어디 감히 우리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코멘트가 엄청 많았다. 내용 전개에 있어 중요한 코멘트도 많았지만, 실험의 기초적인 디테일에 대해서도 많이 물었고, 다소 우리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의 질문도 있었다.

3주의 오로지 리비전만 했다. 출근해서 전날 쓴 response letter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고치고, 추가 실험하고 퇴근하기 전에 결과 업데이트하고. 집에서는 최대한 연구 생각은 하지 않고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이 때 많은 힘이 되어준 게 Office.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란 말도 있잖은가. 아무튼, 리비전을 끝내고 나니 response letter가 총 40장이 넘었다. 교수님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너무 감사했고,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1차 리비전 2주 후에 2차 리비전을 받았다. 폴 형님은 이미 이때부터 거의 된거랑 다름없다고 축하한다고 해서 너무 얼떨떨했다. 아직 official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데 옆에서 샴페인을 터뜨려버리니 좋아할 수도 안 좋아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2차 리비전은 비교적 말랑한 분위기였지만, comment 숫자 자체는 적지 않아서 꽤 힘들었다. JACS에 논문 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다. 계산 결과에 error bar를 추가하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comment도 받긴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 지적인 것 같다.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 포스팅에 자세히 써야지.

Spoiler Alert

2차 리비전 때 폴 형님의 축하에 더해 cover art 제출하는 대로 논문 accept해줄께라는 이메일을 받아버려서인지, official accept 이메일을 받았을 때 좋긴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 만큼 짜릿하진 않았다. 감정의 강도는 전체 감정의 양을 시간으로 나눈 것에 비례하는건가. 미리 결과를 들어버려서인지 기쁨의 강도가 생각보다 낮았던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스포일러의 위험성…

Cover Art

Supplementary긴 하지만, 머리털 나곤 처음으로 journal의 cover image를 권유받았다. Cover image를 보내면 자기들이 심사해서 실을지 말지 결정하고, 선정이 되면 게재료에다가 추가로 $1000불 이상을 지불해야한다. 나는 그래픽 쪽으론 문외한인지라 제대로 된 cover image를 만들려면 누군가에게 외주를 맡겨야하고 그러면 당연히 비용이 발생할텐데, 만약 선정되지 않으면 그 돈 아까워서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앞섰다. 형들이 journal에서 먼저 물어본거면 웬만하면 되는 거라고 도전해보라고 했다. 일단 되기만 한다면, 임용 면접 세미나 때 한 페이지를 떼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미지일테니까.

다행히 고등학교 친구 중에 산디과를 간 친구가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개요를 그려서 부탁을 했다 (왼쪽 그림). 제출 이틀 전 나에게 앙상한 뼈대를 보여주어 내 애간장을 다 녹이더니(오른쪽 그림), 제출 당일날 아주 멋진 그림을 주었다 (아래 그림).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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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내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생각해서 친구에게 30만원 선에서 맞춰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뜻밖에도 폴 형님이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미 친구에게 부탁한 상황이라, 한국에 있는 프리랜서한테 외주를 준것이 계정처리가 될까? 영수증은 어떻게 발급받지? 온갖 서류 행정 걱정을 했는데, 폴 형이 너무 쿨하게 좋은 그림만 얻을 수 있으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이렇게 과제 책임자에게 최대의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이 미국과학계의 힘이자 여유가 아닌가 싶다.

Advertise

논문 출간 이후의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배웠다. 내 논문이 사람들 눈에 많이 노출되어야 인용이 될 것이고, 그래야 학계에서 내 평판이란 것도 생길 테니까. 많은 journal들이 신진연구자들에게 cover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준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1. Twitter

JACS twitter account manager에게 150자로 된 내용을 보내면 JACS twitter에 실어준다.

2. News & Views

Nature와 그 자매지들의 과학소식지 정도 되겠다. 나는 nature chemistry의 News & Views editor에게 기사제의를 받았다. 그냥 nature chemistry에 내주면 안되나요… (진행중)

3. c&en

Chemistry and Engineering News.

 

Singlet fission

아무래도 내 논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설명을 해 놓아야 할 것 같아 몇 자 끄적여본다.

Singlet fission (SF)은 하나의 singlet을 두 개의 triplet으로 나누는 방법으로, 태양에너지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지켜져야하기 때문에 당연히 singlet의 에너지는 triplet 에너지의 두 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큰 singlet 하나를 흡수하나 그것의 반에 해당하는 triplet 두개를 흡수하나 에너지 총양은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겠나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태양전지의 실리콘 패널은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차 (band gap)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band gap보다 큰 에너지를 가지는 광자의 잉여분의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낭비된다. (빨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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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에너지로 낭비되는 잉여분의 에너지를 다른 전자를 들뜨게 하는데 사용되도록 하는 과정이 SF다. 즉, SF는 기존 태양광 패널에서 낭비되는 단파장 (고에너지) 영역에서의 효율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장파장 (저에너지) 영역에서의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triplet fusi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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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과정을 묘사하는 화학식과 각 state의 전자배치 상태는 아래와 같다.

sf

두 개 이상의 분자에서 SF가 일어나는 경우 (intermolecular SF, xSF)는 분자들의 배열상태에 의해 성능이 제약을 받는 등의 한계점 때문에, 최근에는 한 분자안에서 SF가 일어나는 경우 (intramolecular SF, iSF)가 집중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또한 spin state가 바뀌지 않는 S1–>TT 전이가 굉장히 빨리 일어나는 것에 비해, TT state를 T+T로 나누는 것은 굉장히 느리고 심지어 안 일어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iSF 분자의 TT state를 target으로 삼고, 여기에서 전자전이가 일어난다면 xSF가 가진 한계점을 극복함과 동시에 TT를 T+T로 나눌 때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전자 한 개보다는 전자 두 개를 수확하는 것이 효율향상에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아무튼, 요점은 iSF 분자의 TT state에서 다전자 전이를 보였다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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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논문리뷰

최근에 폴 형님에게 비공식적으로 논문 리뷰 요청이 들어왔다. 저널에 투고하기전에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해서, 나중에 정식으로 투고했을 때 너무 혹독한 리비전/리젝을 피하기 위함인 것 같다.

폴 형님이 Singlet fission 분야의 대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 들었는데, 논문을 읽으면서 화가났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오탈자가 너무 많고, 본문의 글과 테이블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알 수없는 대문자 처리도 왕왕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부분부터 다 고치고 오면 읽어보겠다고 하고 싶었다.

술마셔서 머리 아프고, 3박 4일 대구-서울-인천-서울-수원-서울-대전 대선주자급 횡보로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런 논문까지 리뷰할려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논문: Polymer Structure + Excited Kinetics

2016년 한해동안 나를 괴롭힌 cowork 논문이 작년에 출간됐다. (다 써놓고 publish 버튼을 깜빡하고 누르지 않았다니…)

태양전지에 쓸 목적으로 빛을 잘 흡수하고 power conversion efficiency (PCE)가 높은 고분자를 디자인하는 것은 재료 쪽에서는 꽤 핫한 연구주제다. PCE 기록 경신만 하면 JACS, Advanced Material 같은 high impact journal에 쓸 수 있다. 어떤 화합물이 왜 효율이 좋은지를 알아야 그런 분자를 디자인 할 수 있고, 그럴려면 햇빛에 의해 들뜬 전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아야한다. Goodson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time-resolved spectroscopy (시분해 분광학,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광학 데이터의 변화를 보는 것)를 통해 excited state를 들여다보는 일을 주로 한다. 이번 논문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의 linker (furan, thiophene)를 두 개의 side group (dodecyl–C10H21, 2-ethylhexyl)에 조합시킨 총 네 종류의 고분자를 들여다봄으로써, linker와 alkyl 그룹이 태양전지 효율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다.

Thiophene          Furan

Linker가 다르면 photochemical property도 달라진다는 건 다소 예상된 결과였지만, side group의 종류에 따라 분자 구조가 많이 바뀔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양자 계산에서 pi backbone에 붙은 저런 solubilizing group은 무시하기 마련인데, 구조변화가 생각보다 커서 놀라웠다. 어떤 결과를 보면 항상 그것이 왜 맞는지 혹은 왜 틀린지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하신 대학원 지도교수님 말씀을 따라, 내 나름의 설명을 써갔는데 폴형이 동의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일반화학 수준에서도 논문에 실릴 만한 지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보면, 일반화학이 절대 쉬운 과목이 아니고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fluorescence decay rate 값을 구해보았다. 이때까지 내 논문에서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었다. Time-dependent density functional theory (TD-DFT) 계산을 오래동안 많이 해왔지만, 항상 에너지만 보다보니 이 계산이 왜 time-dependent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아무튼, transition dipole moment와 transition energy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계산. 사실 이 논문 쓸 때는 단위변환이 너무 복잡하고, 계산과 실험은 트렌드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지 절대값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단위변환을 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서 arbitrary unit으로 처리를 해버렸다. 지금와서 보니 arbitrary unit이란 말이 썩 보기 좋지는 않다.

Fluorescence decay rate에서도 side group에 따른 영향이 굉장히 컸다. 이 때까지만 해도 non radiative decay와 quantum yield, 그리고 분자구조가 서로 다른 별개의 지식으로 내 머리 속에존재하고 있었는데, 폴 형이 그 부분들을 연결시켜주었다. 뭔가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다.

논문 제목이 너무 길다 (Evaluating the Effect of Heteroatoms on the Photophysical Properties of Donor−Acceptor Conjugated Polymers Based on 2,6- Di(thiophen-2-yl)benzo[1,2-b:4,5-b′]difuran: Two-Photon CrossSection and Ultrafast Time-Resolved Spectroscopy) 재료 쪽 논문들이 좀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논문 제목에 분자의 full name을 꼭 다 써야했는건지, 재료하는 사람들은 저걸 읽으면 분자구조가 머리 속에 그려지는건지, 내가 주저자가 아니라 고치라고 할 수 없는게 아쉽다.

이 일을 시작으로, Ricardo와 본격적으로 collaboration을 하게됐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연구 아이디어가 많은 친구다. 최근에 같이한 작업한 논문이 리젝되서 실망이 큰 것 같아 안타깝다.

정규직으로 가는 길

원래는 임용이 되는 순간 포스팅할려고 묵혀두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디테일한 부분을 까먹게 되서 일단 올리고 계속 보충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분야마다 요구하는 스펙이 워낙 다르다보니 이런 기록을 남기는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도전이니까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과정에서 얻고 배운것들을 기록해놓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2015년

포닥을 나오자마자 하지 말아야할 짓 중 하나가 임용 지원이다. 초반에 자리 잡을려면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은데, 임용 지원을 시작하면 마음까지 들떠서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1. S여대 화학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서: DFT 방법론 개발, Genetic alogirthm을 활용한 물질 디자인

우리는 너를 원하고 있다!라는 것처럼 보이는 공고가 올라왔다. “계산화학”. 그때는 몰랐다. 나 말고도 계산화학을 하는 사람이 수십명은 더 있다는 것을… 거기다가 소식통에 따르면 실험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는 말까지 있었다. 실험 페이퍼는 없었지만 포닥하는 동안 실험을 조금 배우고 있었던지라, 김칫국을 아주 통째로 들이켰다.

첫 지원, 첫 광탈.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실 수 없게 되어서 유감이라는, 굉장히 짜증나는 이메일을 받았다.

2016년

미국 포닥와서 쓴 첫 논문(J. Phys. Chem. C)이 9월에 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공고는 계속 올라왔고, 논문 추가 없이 총 세군데 어플라이를 하였다.

2. K대 화학과: 기억안남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서: 들뜬상태 금속착화합물, 멀티스케일 바이오시뮬레이션

바이오의료헬스클러스터 분야라 정말 기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때 포닥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에 가고 싶었던 참이라, 화학이라는 글자만 보고는 세부분야가 바이오건 뭐건 그냥 질렀다. 연구계획서에 양자화학 시뮬레이션으로 바이오 물질을 다룰 수 있다고 말도 안되는 포장을 하고… (학부 때 저런 개소리했을 떄 교수님 표정을 봤으면서…) 당연하게도 탈락 이메일을 굉장히 빨리 받았다.

그래도 별다른 임용지원 포탈 시스템을 만들어놓지않고, 학과장님께 이메일로 바로 쏘는 시스템이라 편리했다.

3. Y대 화학과: 화학 전분야

대표논문: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리 분별력도 완전히 사라졌었나보다. 대표논문 저거 세 개로 Y대를 지원하다니. 모든 논문의 요약본을 요구해서 서류 준비하는 데 너무 힘들었다. 인터넷으로 접수 마지막 과정에서 “모든 서류를 인쇄해서 우편으로 보내시오”라고 떴다. 인터넷 접수는 왜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해를 못한 만큼, 학교에서도 왜 이런 놈이 지원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나보다. 훗날 이 자리를 꿰찬 사람의 스펙을 들어보니 탈락 통보조차 하지 않은 교무처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4. S대 화학과: 화학 전분야

대표논문: Nat. Commun. [2016],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머신러닝, 태양전지

작성할 서류가 가장 많았던 대학이었던 것 같다. 인적사항 2천자, 학위논문요약 2천자, 지원동기 및 연구계획 2천자, 연구업적 2천자, 본인의 강점 5가지 500자, 강의가능교과목 40자. 내 인적사항을 정말 읽어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하도 머신러닝을 많이 하길래 나도 연구계획서에 머신러닝을 하겠다고 썼다. 해본적도 없으면서 무슨 베짱이었는지 모르겠다. 진짜 이건 지금봐도 0점짜리 연구계획서다.

대표논문으로 J. Comput. Chem. [2015] 대신 Nat. Commun. [2016]을 넣었다. 서류에서 하도 떨어지니까 혹시 공저자건 뭐건 네이처면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질렀다. 이정도면 광탈당해야 마땅한 것 같다.
당연하게도, 대표논문은 내가 주저자 (1저자 혹인 교신저자)인 논문에서 골라야 한다.

2017년

ACS Phys Young Investigator Award를 수상하였다. ACS니까 공신력도 있고, 포닥들끼리 경쟁한 상이라서 나를 포장하기에 좋은 상이었다. 실적 입력할 때마다 수상실적이 비어있어서 썰렁하던 참에 도움이 되겠다했는데, 시상식은 8월말에 있었던지라 E여대 지원할 때부터 써먹을 수 있었다.

이맘때부터는 미국에 남아야겠다는 마음이 부쩍 많이 들기 시작했다. ACS에선 상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서류도 통과못할 정도면 과연 한국에는 내자리가 있는걸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교수님께도 미국대학에 어플라이할 생각이다고 말씀을 드리고 교수님과 같이 연구계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ACS에 낸걸 보완해서 네장짜리 research statement를 작성하고, 한장짜리 teaching statement도 준비해놓았다.

2017년 7월 중순에 논문 두 개를 추가했다. 1저자 하나, 공저자 하나. 특히 내가 1저자 논문이 꽤 임팩트있는 저널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Letters)에 출간되어서많은 도움이 될거라고 형들이 격려해주었다다. 공저자 논문은 이미 많았기 때문에 한 편 더 추가하는 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은 것 같다.

5. K대 화학과: 물리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ACS 상을 받고 난 직후에 올라온 공고라 나름 기대를 했지만 서류 2단계 심사에서 떨어졌다. 아는 형이 K대에서 “실험”물리화학을 찾는다고 하여서, 나 여기서 레이저 실험도 했고 전기화학 실험도 할줄 안다고 열심히 포장을 했지만, 실험논문 paper가 없었던 게 치명타였던 것 같다.

같이 코웍을 많이 한 교수님이 계셔서 그래도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했는데, 그게 오히려 악재였던 것 같다. 코웍을 많이했다는 것은 그만큼 연구분야가 겹친다는 말이니까 대학 입장에선 비슷한 연구하는 사람을 둘이나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원서, 교육계획서, 연구계획서, 학위논문, 대표논문을 각각 5부씩 인쇄해야해서 힘들었다. 다 인쇄하고 나니까 박스 한가득이었다. 날짜가 촉박하여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이 직접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탈락 소식을 듣고나서 더 속상했다.

6. G대: 화학과

대표논문: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지금까지 지원한 대학들 중 연구환경으론 가장 좋아보이는 대학이라 정말 가고 싶었다. 레이저 실험을 같이 할 교수님도 계셔서, 운만 받쳐준다면 좋은 논문을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표논문 선정하는데 뭔가 입맛이 쓰렸다.

연구계획서/교육계획서를 자유형식으로 요구한 덕분에 써 놓은걸 그대로 냈다.

하지만 결과는 입구컷. 동생이랑 뉴욕 여행가는 날 아침에 이메일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미국 지원을 결심했던지라, 미국에서 훨씬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7. E여대 과학교육과: 물리화학/유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J. Comput. Chem. [2015], Inorg. Chem. [2014], J. Comput. Chem. [2013]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1. 서류전형

동생과 함께 그랜드캐년가는 버스안에서 형들한테 E여대 과학교육과에 물리화학/유기화학 공고가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학과만 생각했지 과학교육과는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형들의 충고를 따라 일단 내보기로 했다. 워낙 서류에서 광탈을 많이 했던지라, ACS 수상실적, J. Phys. Chem. Lett., J. Phys. Chem. C 등 논문 두 편을 추가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언제 서류전형 통과 발표가 난다고 따로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작년 공고를 보니 대략 언제쯤 발표나겠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이 되고 눈을 뜨자마자 카톡방을 보니, 같이 지원한 형은 서류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 형이 나보다 실적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광탈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조회를 해보니 합격을 축하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2차 면접 일정이 나왔다. 임용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자는 동생을 깨우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난리를 쳤다. 이제 고작 한 고비 넘었을 뿐인데 마음은 이미 오피스 안에 가 있었다.

2. 면접심사

처음에 온 면접일정 안내문에는 ‘학부 유기화학에서 열역학 법칙을 설명하는 강의 10분 / 연구결과 및 계획 10분’ 발표 준비를 해달라고 했다. 유기화학에서 열역학 법칙? 그럴꺼면 그냥 유기화학 뽑는다고 하지 왜 나한테 저런 짬뽕스러운 걸 시킬까 투덜거리며 도서관에 가서 여러종류의 유기화학 책을 훑어봤다. 물리화학과 유기화학을 짬뽕시킨 스토리를 짜고 나니까, ‘물리화학에서 열역학 법칙’이라고 정정 이메일이 왔다. 스토리 다 만들어놨는데 왜 바꾸냐는 투덜거림이 나왔지만, 다행이라는 마음이 훨씬 컸다.

열역학 법칙 강의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0법칙부터 3법칙까지, 총 네 개의 법칙을 10분 안에 설명하려니까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솔직히 0법칙은 잘 몰랐고, 2법칙은 다양한 베리에이션 중 하나만 알고 있어서 열역학 법칙 네 개를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 흐름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서류접수 때 연구계획서는 2천자로 줄인걸 제출했다. 한글과 영어를 혼용해서 쓰다보니 별 내용 쓰지 않았는데 2천자가 금방찼다. 그래서 내용이 너무 두루뭉술한 것 같아 full research statement를 따로 준비해갔다. 영어로 쓴 걸 그대로 내면 짧은 면접 시간안에 아무도 안 볼것 같아 한글로 번역을 했다.

면접 하루 전날, teaching statement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서류접수 과정에서 teaching statement를 요구하는데 여기는 과학교육과인데도 따로 요구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과학교육과니까 교육철학에 대한 질문이 무조건 나올 것 같아서, 전에 써 놓은 거에다가 강의가능 교과목과 신설교과목을 추가해서 냈다. 나도 영어쓸줄 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건 영어로 써놓은걸 그대로 냈다.

Thermodynamic lecture/연구발표

면접에서 받은 질문들과 나의 답변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 강의경험이 있는가?
    대학 강단에 선 경험은 없다. 하지만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R&E 프로그램 조교로 활동하면서 양자화학의 기본과 프로그램 사용법을 가르쳤다. 또 일반화학 튜터링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학부 학생들에게 일반화학을 2년동안 가르쳐보았다. 조교를 할 때에도 퀴즈만 보고 채점만 하는 수동적인 역할보다는 강의자료를 만들어서 직접 수업을 진행해보았다.
  • 화학과가 아닌 과학교육과에 지원한 이유는?
    교육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를 열어줌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특히 위에서 말한 경험들이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게 했다. R&E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 논문을 작성하였을 때 엄청난 희열을 느꼈고, 일반화학 튜터링 프로그램 학생들이 중간, 기말시험 결과에 행복해 하고 화학과로 진학하는 것을 고려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 또한 일반화학 실험실의 저희반 학생이 어느덧 같은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하는 동료가 되어있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다.
  • 기존 연구결과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대학원 2년차때까지 논문을 쓰지 못했다. 주제도 여러번 바꾸고 방황을 하다보니, 대학원이라는 진로가 내 적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둘 작정을 하고 교수님께 찾아갔는데, 교수님께서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 마음을 다독여 주셨다. 아 선생님이란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한다는 것을 꺠달았다.
  • 계산화학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약간 뜸들였더니 모두 웃으셨다)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고, 흔들리던 저를 바로 잡아준 교수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 리더쉽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는?
  • 실험결과와 시뮬레이션결과가 잘 맞지 않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어제까지도 제가 일하다 온 과제가 있는데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웃음) 실험 논문을 다 써서 가지고 와서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달래고 했다. 마치 제가 계산 하청업자인것 처럼. (웃음) 그런데 실제 계산결과와 실험결과는 반대로 나온다. 약간의 설명을 해드리면 (중략). 물론 시뮬레이션의 특성상 실험과 잘 맞는 결과를 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과 실험결과의 불일치는, 모델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다. 양자역학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닌가? 그래서 지금 공동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내가 곧 실험결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게 잘되면 이론모델 개발에 관한 페이퍼도 같이 쓸 수 있다는 당근으로 시간을 좀 벌었다. (웃음)
  • 계산화학이란 어떤 과목인가?
    (교육계획서 가장 밑에 강의가능 교과목을 보통 쓴다. 대부분의 화학과는 계산화학이 다 있는데, 여기는 과교과라서 그런지 계산화학이 없었다. 그래서 계산화학을 신설하겠다고 적어놓았더니 그걸보고 질문하셨다) 계산화학은 물리화학의 한 분야로, 양자화학 또는 고전역학을 바탕으로 하는 컴퓨터 시물레이션을 활용하여 화합물의 물성을 보는 방법론이다. 많은 학생들이 물리화학을 어려워하는게 온통 수식 투성이기 때문이다. 가령 수소의 오비탈만 하더라도 구면좌표계, 적분, 편미분이 등장한다. 당연히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학생들이 직접 자기들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계산화학을 이용한다면 물리화학 전체의 관심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토의를 바탕으로 수업을 이끌어가겠다고 했는데, 물리화학에서 어떤 토의가 가능한가?
    (교육계획서 제목이 active learning via discussion이어서 이런 질문이 나온 것 같다) 물리화학 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 정답은 하나다. 인문학처럼 너도 맞고 나도 맞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없다. 그래서 대부분 자연과학 수업은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토의가 꼭 정답에 관한 것일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정답에 도달하는 여러가지 길을 토의의 과정을 통해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가령 오늘 시범강의를 한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방법도 교과서마다 달랐다. 엔트로피=# of microstates라는 답은 정해져있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길은 제각각이었다. 학생들은 각자 다른 학문적 배경과 인지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 각각에 알맞은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교수 하나가 정해진 예를 가지고 수업을 하는 것보단 학생들과의 토의를 통해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Start-up fund는 얼마정도?
    (혹시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해서 미리 알아봤는데 카이스트가 대략 1억이라고 했다.) 2-3천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교수님들 놀람) 하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금액이다. 연구실 초반기엔 슈퍼컴퓨팅센터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계산화학의 장점은 컴퓨터와 책상 한 대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
  • 오피스 크기는 어느정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글쎄요, 이 방만큼 큰 방을 요구하면 안되겠죠? (웃음) 앞서 말씀드린대로 책상 하나면 된다. 학생들과 함께 방을 나눠써도 괜찮다. (그건 학생들이 싫어합니다) 아, 그건 생각이 짧았다. 일반 연구실의 실험실 아닌 오피스 파트 크기정도면 충분하다.
  • Fund는 어떻게 확보할건가?
    삼성종합기술원 배터리 그룹과의 공동연구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쪽과 다시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컴퓨터 자원은 키스티에서 확보할 생각이고, 태양전지 페이퍼가 마무리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한화 기업과제 공모에도 지원할 생각이다.
    (사실 이 대답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너무 두루뭉술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답변을 한 것 같다.)

3. 총장면접

내가 몇 순위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들러리라도 열심히 준비하면 뒤집을 수 있고, 내가 1순위라면 그것을 확고하게 굳혀야겠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열심히 준비했다.

20분간 총장님이랑 이야기하게 될텐데 내가 아무것도 준비해가지 않으면 굉장히 상투적인 대화가 될 것 같았다. 자기소개 해봐라, 어떤 연구를 하는가 등 총장님의 질문에 내가 끌려다녀서 내가 원하는 말을 다 못하고 나올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한장짜리 personal statement를 준비해서 드리면, 아무래도 그걸 위주로 질문을 하게 될테고 나를 좀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외/국내 가릴 것 없이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연구, 교육, 그리고 서비스(봉사)였다. 지금 보니까 당연한 말 같은데, 처음에는 뭘 어떻게 적어야할지 조금 난감했다.

Personal Statement

Research Interest, Fund for Research, Education, Service 네 개의 주제로 personal statement 작성했다. 굳이 연구를 두 개의 주제 Interest와 Fund로 나눈 것은, 연구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ACS 상 받은걸 강조하고 싶었고, 대학에서 fund를 어떻게 수주해올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E여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총장님 인사말, 교훈, 인재상 등 모든 걸 싹 다 인쇄해서 읽어보았다. 이 학교 목표에 맞는 연구를 하겠다고 해야 좋아할 것이고, 이 학교 교훈에 맞는 인재를 키우겠다고 해야 좋아할테니, 어떤 학교인지부터 알아야했다.

  • Research Interest: 총장님 인사말에서 ‘4차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란 키워드가 눈에 들어와서 저 개념들을 중심으로 Research Interest를 포장했다. 이미 써 놓은 것이 것에 machine learning 내용이 좀 있어서 다행히 쉽게 포장이 가능했다.
  • Fund for Research: 사실 펀드 계획을 세워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향후 10년 펀딩 계획을 세워놓는다고 저대로 될리가… 그것은 나도 알고 보직교수님들도 알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생각을 해봤고, 이런 도전을 할 것이란걸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연구재단, 삼성종합기술원, LG화학 등을 돌아보며 신임교원이 지원할 만한 과제들을 추렸다. 조교수로 지내게 될 5년을 초기, 부교수로 승진하게 될 이후를 중장기로 보고 펀딩 source를 나누었다.
    이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어느 저널에 몇 편의 논문을 낼 것인지도 용감하게 말했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현실을 모르는 풋내기처럼 보일것 같아서 재임용 심사 기준을 참고했다. 운이 좋게도 재임용 심사기준표를 찾을 수 있었고, 대학에서 교수에게 어떤 것을 원하는지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 Education: E여대 인재상인 THE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썼다. T (Telos, 그리스어 목적), H (Hokma, 히브리어 지혜), E (Experience, 영어 경험). 이것 자체는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이걸 해석해서 다섯가지 핵심영량을 써 놓아서, 그걸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토의중심의 지식탐구, 창의적인 학술활동, 다학제 융합연구, 건전한 인격을 가진 교육자를 키우겠다고 썼다.
  • Service: 이게 사실 제일 난감했다. 대학교수가 연구하고 교육하면 됐지, 어떤 봉사활동을 해야되지? 불우이웃돕기는 아닐테고. 그래서 외국대학에서 작성한 조교수를 위한 조언 등을 검색해서 읽어봤다. 그 중에서 Successful Faculty Performance in Teaching Research and Original Work and Service 이 문서가 Service뿐만이 아니라 Research, Teaching까지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교육봉사, 공동연구, 멘토링, 학술협력으로 나눠서 정리했다.

예상질문 리스트

이 외에도 나올만한 질문거리를 리스트로 만들어서 정리했다.

일단 과학교육과니까 교육철학에 관한 것을 불어볼 것 같았다. 막연하게만 떠오르고 잘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연구실 누나가 알려준 장하석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가 큰 도움이 됐다.

그 다음으론, 교육 목표에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개척자를 양성한다는 말이 있어서 성차별, 성평등 관련 부분에 답변 준비를 열심히 했다. 아무래도 여대니까 저런  부분의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올 것 같았다. 친구가 추천해준 손아람 작가의 세바시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성차별의 구조적 문제와 거기서 파생되는 역차별 문제를 비교적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외에는, 연구분야 소개, 연구계획 개요, 연구계획 세부, 연구계획 관련 산업 현황, 인공지능 설명, 4차산업시대 사람의 역할,  공동연구하고 싶은 교수님, 대안교육, 펀딩계획 세부, 논문계획 세부, 교육철학, 학교학과발전 방안, 공개강의, 학생지도 방법, 봉사활동, 과학도서, 자기소개, 장점, 단점, 조기졸업한 이유, 감명 깊게 읽은 책, 리더십 사례, 취미, 구성원간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 과학교육과에 대한 정보, 큰 규모의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는 방안, 과학교육과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E여대에 지원한 이유, 과학교육과 지원한 이유, 마지막 한마디, 기독교 신앙, 성적관리, 롤모델, 여학생, 힘들었던 일, 한국에 지원하는 이유, ACS 상은 어떤것인지, 연구의 좀 더 큰 그림, 경력 3년동안 지원한 곳은 없었는지, 과학교육과 진선미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문제,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 자율학기제 등에 대한 답을 준비했다.

실전

전날 친구집에서 잘 준비를 하는데 학과장 교수님께 카톡이 왔다. 한국에 왔는지 체크하시고, 내일 면접 시간에 늦지않게 오라고 하셨다. 내 합격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니까 저런 안부 카톡에 답장보내는 것도 엄청 신경이 쓰였다. 너무 바로 읽으면 폰 붙잡고 사는 놈 같고, 답장이 너무 늦으면 연락 잘 안되는 답답한 놈 같고.

당일 친구와 함께 일찍가서 면접장소를 확인하고 나오는데 총장님을 보았다.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셨다. 하지만 당황해서 인사는 하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훗날 이게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수 많은 면접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겠지…

까페에서 대기를 하다가 3시 20분쯤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나 빼고 전부 여자가 우루루 타니까, 내가 꼭 바다위에 떠 있는 섬 같아서 위화감이 들었다. 까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긴 했는데 거긴 공간도 넓고 친구랑 함께 있어서 그런 기분이 덜 들었던 것 같다.

면접 장소엔 학과장 교수님이 미리 와 계셨다. 내가 과학교육과 첫 번째 면접이라서 학과장님도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이런저런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내 차례가 되어서 면접에 들어갔다.

실제 면접장 분위기는 굉장히 차가웠다. 총 여섯 분이 계셨다. 총장님이 가운데 계시고, 오른쪽에 교무처장님, 학생처장님이, 왼쪽에는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교수님, 총무처장님, 과학교육과 학과장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총장님의 맞은 편에 앉았다.
들어가서 발표자료를 좀 나눠드리려고 한다고 하면, 당연히 어디 한 번 봅시다라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짜르셔서 조금 당황했다. 옆에 계시는 분께 자료를 드리고 자리에 앉아서 면접을 시작했다.

  • 자신의 연구분야 간단한 소개
    후배가 코치해준 대로, 나와 관련된 서류들을 검토하시는 동안 나는 계속 주절거렸다.
  • 훌륭한 과학 선생님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다행히 첫 질문은 예상했던 질문이라 나름 수월하게 대답했다.
    깊이있는 전문지식, 폭 넓은 교양지식, 학생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
    지금 생각으론 4차산업시대에 연관지어서 통섭적인 사고 같은걸 추가할걸이란 아쉬움이 든다.
  • 전문지식 전달을 꼭 교사가 해야하는가?
    첫 번째 답변의 전문지식 부분에 대해서 다시 물으셨다. 보통 이런 면접은 허례허식인 경우가 많다고 들어서, 한 번의 질답이 오가면 끝일 줄 알았는데 다시 물어보셔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연구실 사람들과 면접 준비를 하면서 나온 질문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이어서 크게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 창의성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두 번째, 미래사회에서 교사의 역할 답변에 대한 이어지는 질문이었다.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드니까 오히려 조금 마음이 편했다. 나도 면접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심층면접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장하석 교수님 강의를 본 것이 답변에 큰 도움이 됐다.
  • 이후에 추가로 코멘트를 하시고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 과학교육과에 지원한 이유
    이건 2차 면접때도 나온 질문이라 비슷한 답변을 했다.
  • 여성 과학자가 많이 부족한데 대처 방안은?
    이것도 대충 생각해본 질문이라 준비한 대로 대답을 했다.
  • 추가로 몇 개 더 물으셨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총장님 질문이 끝나고 교무처장님의 질문 순서로 넘어갔다. (사실 이때는 누가 누군지 몰랐다. 지금와서 찾아보니 교무처장님이셨다)

  • 삶에서 실패한 경험?
    이것도 2차 면접과 같은 질문.
  • 스펙이 좋은 편이라 화학과를 지원해도 될 것 같은데, TO나면 옮기고 싶은가?
    아닙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주절주절.
  • 취미는? 독서 같은 학구적인 것은 전부 빼고.
    수영을 좋아한다고 했다. 최소한 수영하는 동안은 연구생각이 안나서 행복하다고 했더니, 취미생활도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 하는 수단이냐고 하셨다. 너무 틀에 박힌 대답인가 싶어서 식은 땀이 났다. 차라리 솔직하게 미드보는 거 좋아한다고 할껄…
  • 게임을 하는지?
    이건 정말 왜 물어보셨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하게 한다고 답하고, 중독은 아니라는 사족을 붙였다.

대략 15-20분 정도 면접 본 것 같다. 총장님 질문을 저렇게 간단하게 복기했지만, 실제로는 앞뒤에 살을 많이 붙여서 질문하셨다. 이런게 내공인가 싶었다. 분위기가 굉장히 딱딱해서 준비해 간 마지막 한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서 빠져나왔다. 친구가 적어준, 내 마음에 정말 쏙 드는 킬링멘트였는데… 억지로라도 타이밍을 만들어서 말하고 나올 걸 그랬다.

4. 결과

같이 최종면접에 올라간 친구가 임용되었다.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것이 사라져서 너무 속상했다.면접장소 미리 확인하러 갔다가 총장님 만났을 때 인사를 안한게 문제인걸까, 만 29세인데 이루어 놓은게 많네요라는 코멘트에 만 30세입니다라고 말대꾸를 한게 문제였을까. 너무 틀에 박힌 정형화된 내 답변들이 문제였을까. 그 이유만이라도 알려주면 좋을텐데… 가족들이 실망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가족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주어서 정신줄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꼭 더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서 나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8. J대 화학교육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내가 언제부터 교육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여대 과교과에 이어 2연속 사범대에 지원했다. 여기는 분야가 “이론 및 계산화학”이라고 내 전공을 콕 찝어가지고 나와서 괜히 더 마음이 설렜다.

E여대 면접을 마치고 친구들과 진탕 술을 먹고 나서 서류를 준비했다. 다행히 교원공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실적 입력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 양자방 연구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쇄하는 것까지 무난했다. 다만, 논문의 질을 JCR 퍼센테이지 기준으로 10 % 안이면 S등급이라고 300 %, 그 밖은 A등급으로 100 %만 인정해주는 식으로 평가한다. Impact factor로 논문을 평가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다가 마음대로 10 % 안이면 S등급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더 최악이었다.

지원접수증을 보니 006-01-003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앞의 세자리는 대학코드, 중간의 두자리는 학과, 마지막 세자리는 지원자 숫자인거 같다. 사범대학-화학교육과-3번째지원자란 의미로 추정된다. 인터넷으로 접수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류접수 마감 이틀전에 접수한 내가 거의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1. 기초심사

합격발표가 나서 면접일정을 보려고 했더니 전공심사가 따로 있었다. 강원대도 기초심사, 전공심사로 나누어서 하는걸로 보아 두단계 서류전형 심사는 국립대의 특징인가보다. 기초심사는 지원자격 정도만 검토하는 것이라 통과한 것 같다.

2. 전공 1단계 심사

예고한 것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12월 13일 오후 6시, 미국시간으로 13일 오전 4시에 발표가 났다. 한번 느껴본 기분이라 그런지, 합격의 기쁨이나 짜릿함은 솔직히 처음에 비해 덜했다. 왠지 E여대가 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서, 이건 무시할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 말도 안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들은 결과, 면접에는 웬만하면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3. 전공 2단계 심사 (면접)

우여곡절 끝에 J대에 도착을 했다. 학과사무실이 대기장소라 들어갔더니 다른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지원자 둘이 한 책상에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숨막히는 일인지는 글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공개강의: 열역학 제 2법칙

내가 먼저 공개강의를 했다. 심사위원은 학과교수님 네 분 + 사범대 학장님이 계셨다. 주제는 열역학 제 2법칙. E여대에서 열역학 법칙 10분 발표한 것에서 인트로와 2법칙 부분을 따왔다. 피피티의 골격이 갖추어져 있으니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가 E여대의 색깔과 J대의 색깔이 굉장히 비슷했다.

열역학 법칙을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다보니까, 더 이상 그림과 스킴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들이 생겼다. 가령, Carnot cycle의 효율, 다양한 과정의 엔트로피 변화 유도, Clausius inequality 등을 유도하는 부분은 수식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아는 형님이 “열역학이라면 피피티 쓰지말고 서판을 시도해봐라. 전부 피피티 쓰기 때문에 칠판에 아무것도 보지않고 수식 적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일수가 있다”라는 조언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Const P, Const S, Const V, Const Q 네 가지 상태에서의 Entropy 변화를 칠판에 유도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부분이 이번 발표의 킬링 컨텐츠가 아니었나 싶다.

질문

생각보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많이 쏟아져서 당황했다.

  • 열역학 제 2법칙을 한글로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 엔트로피와 Gibbs Free energy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 G=H-TS식을 실제 화학반응 예를 들어 설명해줄 수 있나?
  • 엔트로피의 statistical mechanics 정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이외에도 질문들이 더 많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공세미나

이 부분은 별로 흥미가 없으신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마음편하게 발표한 것 같다.

실제 세미나가 끝난 후에 연구에 관한 질문은 한 두개 정도 나왔다. Two-photon absorption 계산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polymer의 binding 에너지는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이 가능한가 정도.

나의 강점이랍시고 실험과 계산을 모두 할 수 있는 것을 강조했는데, 계산만 해도 논문은 쓸 수 있는지가 궁금하신 것 같았다. 아주 간단한 실험밖에 할 수 없는 환경이라, 레이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는 아닌것으로 보였다. 역시 대학마다 원하는 인재가 있고, 그것에 맞춰서 피피티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나머지는 ‘사범대의 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주로 이야기하시면서, 그래도 우리과에 오셔서 연구하실 수 있겠나라는 질문을 다양한 표현으로 바꿔가면서 물어보셨다.

학과장 개별미팅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조교님이 잠깐 남아있다가 학과장님과 잠깐 만나고 가시라고 했다. 내가 E여대에 지원한 것을 알고 계셨다. 복잡하고 긴 이야기 끝에, 나는 멍청하게도 애매한 답변을 하고 말았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2018년

한국 대학은 최근 3년 실적을 보는 곳이 많다. 그래서 14년 연말에 나온 JCC 논문을 비롯하여 수많은 논문들이 짤려 나갔다. 거기다가 2015년은 포닥와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던 때라 논문도 없어서, 2018년 초반 임용지원에는 3년 실적이라고 해도 2년 실적과 별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다. 실적에서 제외되는 논문과 비슷한 퀄리티의 논문을 두 편 이상 써서 논문 숫자를 늘리거나, 한 편을 쓸거면 퀄리티를 반드시 높여야만 하는 한 해라 마음의 부담감이 컸다.

9. B대 화학과: 물리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이례적으로 굉장히 빠른 타이밍에 ‘물리화학’공고가 올라왔다. 계산화학 분야를 뽑을거라는 정보를 듣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나마 예전에는 논문 숫자라도 많았는데, 이제는 다 잘려나가서 실적란이 굉장히 휑했다. 그렇지만 작년 연말의 2연타 때문인지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라는 평온한 마음가짐이라, 광탈 당해도 큰 충격이나 상처는 없었다.

*C대 화학과: 물리화학

3년 실적 주저자 6편. (IF 10이상일 경우 3편, JCR 5%내일 경우 3편으로 인정)

지원요건이 되지 않아 접수조차 못했다.

10. I대 화학과: 계산화학

대표논문: J. Phys. Chem. Lett. [2017], J. Phys. Chem C [2016]

연구계획: 태양전지, TADF

  1. 서류전형

J대 화교과가 계산화학을 특정해서 뽑았을 때 상당히 큰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했다. 6개월 사이에 빅페이퍼를 쓴 사람이 3명 이상 있지 않다면 나에게 면접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2. 면접심사

면접일 10일 전 쯤에 결과를 통보 받았다. 연구업적 영어로 20분, 연구계획 한글로 10분, 질의응답 한글/영어 섞어서 20분. 스카이프로 면접이 가능하다고 한 첫 번째 대학이었지만, 스카이프’도’ 가능하다는 것과 스카이프’만’ 가능하다는 것은 너무 큰 차이가 있기에 비행기를 끊었다. 아무래도 직접 면대면으로 본 사람에게 더 큰 호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삯 아끼자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화학과 면접은 처음이었는데, 사범대랑 달리 미니렉처를 요구하지 않았다. 면접 본 세 곳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조금씩 달라서 만들어놓은 피피티 자료들을 조금씩은 손봐야해서 힘들었다. 10분짜리를 20분으로 늘리고, 한글을 영어로 바꿔야하는 등 소소하게 손 갈 일이 많았다.

면접자들끼리 만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분리를 한다. 당연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조교분들이 노트북/usb를 가져가서 레이저 포인터까지 다 준비를 해주신다. 말끝마다 박사님이란 호칭과 함께 극존칭을 사용하셔서 몸둘바를 몰랐다.

이때까지 면접 본 세 곳의 대학 중 유일하게 학과 면접에서 항공료를 보조해주는 학교다. 금액은 아직 안 받아서 모르겠지만, 50-100만원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부분이 I대학에 대한 호감이 생기는 것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금액을 떠나서 아직 학교 식구도 아닌 지원자를 배려해주는 학교라니. 이런 부분이 많이 알려진다면 학교지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홍보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계획 발표는 Singlet fission/컴퓨터 활용한 분자 디자인/reaction mechanism 세 개의 주제에 3분씩 할당했다. 앞에 두 개는 원래 research statement에 있는 것이었지만, 반응 경로 연구는 학과 교수님들의 연구 프로필을 보고 추가한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 랩의 주력 연구 분야라서 대학원생들 피피티, 논문 결과물들이 화려해서 저 부분도 나름 알차게 채웠고, 이 부분이 킬링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문

면접은 생각보다 평이했다. 50대 이하의 젊은 교수님들의 질문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이 지긋하신 물리화학 교수님이 질문을 주도하셨다.

  • CASPT2로 계산하기엔 분자가 꽤 커보이는데, 얼마정도 걸리나
  • CAS, RAS 차이점
  • 공저자 논문이 많은데 어떤 기여를 한 것인지
  • 최근 3년 publication 숫자가 적은 이유
  •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
  • 펀딩 수주 계획
  • 펀딩을 직접 수주해봤는지
  • Leader로 연구를 이끌어본 경험이 있는지
  • 스트레스 푸는 방법
  • 학부 3년 졸업의 장단점
  • (영어질문) 학부생들을 대학원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법

연구 성과를 포함해서, 영어 소통 능력, 사교성 등 다양한 부분을 고려하는 것 같았다.

영어 질문이 있을 것 같아서 연구분야 소개/자기소개/지원동기/미시건소개/대학원유인책/학과 사업에 기여할수있는 부분/취미/펀딩수주계획/공동연구계획/학생관리/초기정착계획 등을 준비했다. 다행히 저 중에 하나가 걸려서 영어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패스했다.

 

잡담: 교수 위의 과학자

UM 화학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아니 UM 전체라고 해도 되겠다. 바로 Melanie Sanford 교수님. 연구를 잘하시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강의까지 잘하시는 줄은 몰랐다. 타과 학생들이 Sanford 교수님의 유기금속화학 수업 들으러 화학과에 올 정도라고 하니… (유기금속화학은 카이스트에서 500번대, 대학원 과목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게 전부 칭찬 일색이다. “화학적 직관이 엄청 좋아서 실험을 안해도 결과를 쉽게 예측한다”, “논문을 이해하기 쉽게 잘 쓴다”, “말을 엄청나게 빨리하는데 논리정연하다” 등등… 과학자가 들을 수 있는 찬사는 혼자 다 차지하신 것 같다. 보통 연구력이 높은 교수님들은 강의력이 조금 부족하기 마련인데, 이 교수님은 완전체인 것 같다.

당연히 다른 큰 학교에서 스카웃 제의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오고 UM은 간판스타를 지키기 위해 역오퍼를 넣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지난 번에 들은 것은 NMR 기계 4대 였다. 화학과 전체를 위한 게 아니라 Sanford 교수님 실험실만 사용하는 것으로… (카이스트 화학과에 2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최근에 학교에서 제시한 역오퍼는, 논문/그랜트 작성을 전담할 새끼교수를 학교가 대신 8만불 주고 고용해주는 것이다. Sanford 교수님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제시하면되는 교수 위의 과학자가 된 것 같다.

연구: 남이 인쇄한 내 논문

전세계 어딘가에 내 논문을 읽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가 내 논문을 인쇄해서 줄까지 치면서 읽는 것을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에 줄을 그어놓은 것을 보고 내 뜻이 잘 전달됐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다가도, 돼지 꼬랑댕이에 달린 물음표 표시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폴 형님이 신입생에게 내 논문을 읽히는 것을 보니, 후속연구는 신입생에게 시킬건가보다. 후속연구가 필요하긴한데 그리 임팩트있는 논문이 되긴 어려워보여서, 누군가 대신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잘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폴이 만들어낼 결과물을 비교해보면 내가 PI로서 어느 정도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가늠해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빨리 논문 써서 내 인용지수 좀 올려다오 뉴비야.

연구: 양자화학

내가 내 새끼 욕하는 건 돼도, 남이 내 새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얻다대고 양자화학 그거 대충 실험결과보고 두드려 맞추는거 아니냐는 막말을 해.

공부 좀 합시다.

연구: 썰을 푼다

현재 PI와 함께 일하면서 똑같은 데이터를 가지고도 썰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논문의 퀄리티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최근에 ‘아는 형님’이랑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문득 생각이 나서 잊어버리기 전에 글로 남긴다.

‘썰을 푼다’라고 하니까 얄팍한 술수처럼 들리는데, 오히려 정반대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현재 연구진행 상황 및 방향/미래에 해결해야할 문제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될 때 통찰력이 생긴다. 데이터 더미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현재 PI의 능력에 얼마나 감동했는지는 여기에 구구절절 써 놓았다.

들은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카이스트 화학과 슈퍼스타 유룡 교수님 이야기다. 동기형이 제올라이트 안쪽에서도 그래파이트가 자랄 수 있다라는, 동기형 말로는 carbon 정도에 나갈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교수님께 갔다고 한다. 교수님께서 데이터를 딱 보시더니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3D 그래파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짜면 네이처 갈 수 있다라고 하셨고, 실제로 네이처 표지까지 갔다.

통찰력을 기를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결국 열심히 논문을 읽고, 많이 생각해보는 수 밖에는 없는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뭐 새로운 것이 없나 백날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프고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coupled triplet state에 관한 review를 쓸 일이 있어서, singlet fission과 관련된 1970년대에 나온 butadiene 논문에서 시작해서 2018년 논문까지 총 100 여편 정도를 읽었다.  (Singlet fission은 이제 연구 끝났다고 하는 모 박사님의 말씀과는 달리 2018년에도 네이처 켐, 잭스 줄줄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어느 정도 숲이 보이는 느낌이다. 그 전에는 연구 주제랍시고 머리에 떠오르면 선행연구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시작하다보니 남이 이미 해 놓은 일 중복된 경우도 있었고, 그 분야의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하다보니 좋은 퀄리티의 논문을 쓰지 못했다. 솔직히 선행연구라는 것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서 논문은 초록, 결론, 그림, 테이블 순서대로 훑어보기만 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고 행동이었는지 10년만에 깨닫는다.

책:인생=논문:연구

그 전에 쓴 research statement는 찢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