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아리랑

한창 책 수집에 미쳐있을 때 (한달에 10-15권씩 산것 같다) 장편 대하소설을 많이 샀었다. 아리랑도 그 때 산 책들 중 하나이다. 태백산맥을 읽고 느낀점이 많아서, 언젠가 아리랑과 한강도 마저 읽어야지 했는데 그 다짐을 실천하는 데에는 대략 10년이 걸렸다.

일제 강점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 친일파, 일본인 등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대하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물들 간에 얽히고 섥혀있는 삶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남의 일상을 관찰하고 싶은 욕구가 부쩍 커진 것 같다. 이걸 관음증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변태같이 뭘 훔쳐보겠다는 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서 남들의 하루는 어떤지 궁금하다. 공부할 땐 어디서 어떤 자세로 하는지, 밥은 뭘 먹는지 등. 아무튼, 아리랑을 읽는 동안 여러 사람의 삶을 살아 볼수 있어서 좋았다.

그 중 몇몇 기억에 남는 인물들이 있다. 독립 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가서 조선에 남은 자식들을 돌봐줄수 없었던 아버지, 철저한 친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자식의 미래를 위해 순사자리를 알아봐주는 아버지. 자기가 총각때부터 사랑해온 여자를 끝까지 지켜주는 친일 깡패. 일제에게 속아 하와이로 강제 이민을 가게 된 농부. 양친을 일제에게 잃고 십여년간을 생이별한 남매. 이들이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해가는 모습,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과 자기 자신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등이 특히 흥미로웠다.

내가 일제 시대를 살았으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대단한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당연히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위성과는 상관없이 소설을 읽다보니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 자꾸 들었다. 춥고, 배고프고, 고달프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항상 느끼면서 나라라고 하는 무형의 그 어떤 것을 되찾기 위해 살 수 있을까. 아마 나는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는 못하고, 소극적인 저항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책의 배경이 되는 군산, 목포, 나주 등을 곧 찾아가 볼 생각이다.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 가본 벌교가 그렇게 좋았는데, 이번 여행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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