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지도교수님의 승진

며칠전 지도교수님이 테뉴어 심사 겸 부교수 승진 세미나를 하셨다.

세미나 제목이 Surveying reaction mechanism인만큼 내가 한 일은 발표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처음 몇 페이지에 photochemistry, electrochemistry 등등도 하고 있다고 간단히 소개된 정도.

자기가 직접 개발한 tool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두 개의 case study를 보여주었다. 놀라운 것은 두개다 자기 혼자서 실험 그룹과 cowork한 결과라는 것이다. Nature와 JACS. 우리랩에서 나온 가장 임팩트 높은 저널이란 점 때문에 저 두개를 선택했을 거라고 이해는 되지만, 그룹멤버가 포함되지 않은 페이퍼를 테뉴어 심사에 쓰다니 왠지 기분이 씁쓸하다. 저 둘 중에 하나라도 나한테 넘겨줬다면…

밥값을 제대로 못 한 건 아닌가 싶어서 괜히 불안하고, 미안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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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자들은 같은 질문을 받는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장난스럽게 나도 페미니스트다, 젠더감수성이 중요하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페미니즘이 뭔지 잘 모른다. 여자가 성별로 인해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된다 정도의 막연한 느낌.

연초에 저자 (레베카 솔닛)의 인터뷰를 읽었다. 페미니즘 뿐만이 아니라 당시 미국 대선까지도 폭넓게 다룬 인터뷰라 흥미로웠다.  언젠가 저 사람의 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기대한 것은 좀 더 이론적인 페미니즘, 그러니까 교과서와 같은 것이었는데 이 책은 에세이집이었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제목과 표지만 보고 고른다…) 여배우, 여기자 등 여성의 직업 앞에는 유독 성별을 표시한다, 성폭력의 원인은 피해자의 옷차림과 행동거지이다 등 널리 알려진 것부터 나는 잘 알지 못했던 여성 혐오의 사례까지 폭 넓게 다뤘다. 그 중 특히 공감이 가는 몇몇 대목이 있었다. 여성 혐오/차별은 여자 아이는 공주 인형을 가지고 놀고, 핑크색을 좋아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동시에 남자 아이들은 로봇을 가지고 놀아야하고, 파란색이나 검은색과 같은 것을 좋아해야만 한다는 사회관념을 만든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다소 튀는 진홍색이나 빨간색 남방을 입었다고 선생님께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자친구들은 진홍색 바지를 입기도 했는데 굳이 왜 나에게만 그랬나 싶다. 여성 차별은 곧 남성 차별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혹은 주요한 역할을 맡는 영화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그 사람의 처지에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감정 이입해볼 여성이 없다는 거다. 그 사람의 처지를 공감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당하는 차별도 불공정함도 쉽게 이해할 수 없고 그런 것들이 분노를 일으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자의 권리 증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약자를 대변하려는 사상이다.

잡담: Check deposit

Check를 현금으로 바꿀려고 은행에 갔다. 도와주시는 분이 앱을 깔면 다음부턴 은행에 직접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국 은행의 앱을 떠올린 나는, 그냥 니가 도와주는게 나을것 같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정말 간단하니까 한 번 시도해보라고 해가지고 chase 앱을 받았다.

Check 앞면 사진찍고, 뒷면 사진찍으니까 끝. 입금까지 대략 2시간정도 걸렸다.

미국이 왜 선진국인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미드: Narcos Season 3

DEA가 콜롬비아의 마약상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각색한 Narcos 시즌3이 시작됐다. 넷플릭스는 에피소드 전체를 개봉일? 당일에 전부 업로드해줘서 나같이 몰아보는 사람에겐 너무 좋은 서비스이다.

시즌 2 마지막에 에스코바가 사살당하면서 이대로 드라마가 끝나는구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에스코바의 빈 자리는 다른 마약 카르텔이 채운다. 에스코바가 잔혹함과 선전전을 앞세운 공격적인 마약상이었다면, 시즌3에 등장하는 Cali 카르텔은 수면 아래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단순히 겉보기엔 ‘품위있는’ 마약상이다. 그래서 이야기 전개방식도 시즌 1-2와는 상당히 다르다.

시즌 1-2에서는 잔혹무도한 에스코바 대 미국 DEA+콜롬비아 경찰 구도였다면, 시즌 3에서는 부패한 권력 대 그걸 잡으려는 반부패+카르텔 내부고발자 구도이다. 그래서 단순한 추격적이 아니라 함정을 파고 덫을 설치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게임의 연속이다. 법과 공권력을 가진 사람 및 기관이 부패하기 시작하면 이것을 바로잡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 드라마가 잘 보여준다. 뭐 하나 제대로 수사를 하려고 해도 장관들이 나서서 법적인 이유를 들어 쉴드를 치고, 기껏 잡아놓으면 법의 허술함을 찾아내어 빠져나간다. 이런걸 보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해야할 법이라 것이 돈에 의해 어떻게 좌지우지되는지 알수가 있다. 변호사란 직업의 특성상 의뢰인의 최대수익 (=최저형량)을 위해 법의 허점을 찾아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돈만 있으면 아무리 죄를 지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것에서 오는 허탈함은 어쩔수가 없다.

또 카르텔의 내부고발자가 두목을 DEA에 넘기기 위해 협력하는 장면들은 정말 최고의 긴장감을 준다. 두목의 행적을 파악하는 위치까지 가려면 그쪽의 신임을 얻어야하니까 DEA의 정보를 조금씩 흘려주다가, 한번씩 덫을 설치한다. 하지만 부패한 권력에 의해 체포작전이 노출되고 실패하면서 카르텔 내부에 DEA 협력자가 있다는 게 드러난다. 내부고발자를 죄어오는 카르텔과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한 내부고발자의 싸움이 꽤나 흥미진진하다.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검거당시에 찍힌 영상과 사진을 한번씩 보여주는데, 옷과 머리스타일, 장신구까지 똑같이 해놓았다.

콜롬비아의 마약상을 완전히 박살내서 시즌 4는 없겠구나 했는데, 멕시코 마약상들이 배를 타고 마약을 운반하는 것을 DEA 요원이 지켜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시즌3이 끝난다. 누가봐도 시즌4 예고편. 시즌4는 어디에서 보게될까.

미드: Grey’s Anatomy Season 10

대학생때부터 보기 시작한 그레이 아나토미가 새 시즌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종영한 줄 알았는데 시즌 13이 나왔다. 무려 13년째… 가장 장수한 미드가 아닐까 싶다.

그레이 아나토미 본다고 하면 가장 흔한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그거 막장 드라마잖아’이다. 처음 몇 시즌은 그런면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정말 그렇다. 사랑의 작대기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고, 이 여자랑 자고 저 여자랑 자고.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다양한 사회적 문제나 신기술, 그리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드라마 안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그 중 몇 개를 꼽아보면,

토레스-애리조나 레즈비언 커플이 싸우고 사랑하고 애기를 키우는 모습은 동성애자 커플도 이성애자 커플과 하나도 다를 것없는 평범한 커플이란걸 보여준다. 막연하게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거지’라고 생각만하는 것보다 화면 속에서 두 여자가 키스하고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장면에 자주 노출되니까 그런 것들이 익숙해진다. 머리로만 이해되던 것이 일상이 되는 느낌.

병원의 구조조정. 막장 의학 드라마에서 구조조정이 웬말인가 싶지만 노사분규 과정을 여러편에 걸쳐 상당히 자세하게 다룬다. 구조조정이 있을거란 소문이 퍼져서 웅성대는 병원에서 시작해서, 직원들에 대한 연민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경영진, 병원을 지키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까지. 해결되는 방향이 ‘막장’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 지점까지는 신문에서 글로만 보던 것을 드라마로 잘 그려낸 것 같다.

기술의 발전과정도 드라마안에 잘 표현된다. 시즌 10은 2014년에 방영되었는데, 저기서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인공장기를 이용하여 수술하는 장면, 홀로그램을 활용하여 장기의 모습을 3D로 보는 장면 등이 나온다. 인공장기라고 하니까 너무 먼 미래의 일 같기도 하지만, 분명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될 기술이다. 과학과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지금 기술이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 이렇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안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드라마가 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이다.

저런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와 아이를 원하는 남자 사이에서 생기는 일, 커리어와 가족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 헤어진 연인과 한 직장을 계속 다녀아 하는 사람의 고통 등 우리 삶에, 우리 곁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이다.

병원내의 막장 러브스토리로는 더 이상의 이야기 전개가 힘든 탓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예전보다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 장황스레 자기 합리화를 해놨으니 시즌 11을 마져봐야겠다.

잡담: 생일

이제는 몇 번째 생일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1987년에 태어났고 지금이 2017년이니까 태어난 1987년을 제외하면 30번째구나. 이렇게 셈을 해봐야 비로서 알게된다. 예전에는 형들이 나이 대신 OO년 생입니다라고 할 때 왜 굳이 나이 대신 태어난 연도를 말하는 건가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초등학교 때 생일파티를 돌이켜보니, 양념통닭와 제도샤프가 생각난다. 그 때는 집에서 어머니가 한 상 가득 차려놓은 생일상을 앞에 두고 친구들이랑 파티를 했었다. 희안하게 많고 많은 음식 중에 빨간 양념통닭이 유독 생각난다. 그리고 선물로는 제도샤프를 가장 많이 받은 것 같다. 금색의 제도4000을 사온 놈도 있고, 평범한 제도3000을 사온 놈도 있고. 연필도 아니고 그 많은 샤프는 다 어디 갔을까…

중학교 때는 세 번 다 피자헛에서 생일파티를 한 것 같다. 학교에서 상당히 멀리 살았던지라, 친구들을 집으로 부를 수가 없어서 외부에서 생일파티를 하게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직원들이 축하해줘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주목받는 것이 마냥 좋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부터는 생일에 있었던 일들이 제법 디테일하게 기억난다. 반 애들끼리 돈을 모아서 생일케이크를 사서, 2차 마치고 밤 12시에 테니스장 옆 국기게양대 앞에 모여서 생일파티를 했다. 케이크는 항상 학교 앞 데레사마트에서 사왔는데, 제대로 먹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생일맞은 애 얼굴에 찍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으로 갔으니까…

대학교부터는 생일은 더 이상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여자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여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에 너무 심취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같이 파티하는 것 마저 서운하게 느껴졌다. 생일은 일 년에 하나뿐인 나의 날, 나에게 가장 소중한 날이니까 그 날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만 있고 싶다는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내 생일은 아니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친구의 생일이 있다. 기말고사 기간에 생일이 있어서 큰 파티를 못했는데, 내가 대학원에 일찍 가는 바람에 시간이 되서 둘이서 탁주 마시면서 여자이야기를 했던 게 왠지 기억에 오래남는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누군가의 생일은 술을 진탕 마시기 위한 좋은 변명거리였다. 같이 놀던 친구, 형, 누나들이 술을 워낙 좋아해서 다 같이 즐겁게 놀았다. 그때처럼 즐겁게 걱정없이 놀 수 있을까.

미국에 오고나서 첫 번째 생일은 친구와 함께 재밌게 보냈다. 한국 식당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즐거웠다.
미국에서 맞는 두 번째 생일 직전에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비행기값이 가장 싼 날을 고르다보니 얄궂게도 생일 전 날 귀국하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가족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공허함이 너무 컸다. 2시간 전만해도 가족들이 앉아있던 소파가 비어있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다. 생일은 나에게 가장 특별하고 제일 행복해져야하는 날인데, 반대로 세상에서 내가 가장 비참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무작정 옛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친구다.
이번 생일은 다행히 동생이 미국에 있어서 같이 저녁식사를 할 것 같다.

이젠 정말 나이가 들었는지, 생일이 예전만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잡담: 새학기

새학기 시작일에 맞춰 학부생들이 돌아왔다.

신입생처럼 보이는 애들은 어리버리까면서 부모님들이랑 여기저기 둘러보고, 기숙사 사는 애들은 부모님, 친구들이랑 이삿짐 나르고 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몰려 다니고.

오랜만에 학교에 활기가 넘친다.

괜히 대학교 입학하고 부모님이랑 동생이랑 이사하던 때가 생각나서 한참동안 구경했다.

연구: Free paper

레이저 실험실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좀 놀라우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실험결과를 설명할 수 있는 계산결과가 필요해서 내가 도와주고 있는데, 예상보다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주 디스커션을 하게 되었고, 어제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생각보단 쉽지 않네. 시간이 좀 더 걸릴수도 있겠다’라고 했더니,  대답이 ‘그래도 너는 free paper를 얻으니까 좋은것 아니냐’고 했다. 이게 왜 free일까. 실험 결과 다 뽑은 상태로 계산은 서포팅으로 들어가니까 그런가…

아무리 요즘 양자화학 프로그램이 사용하기 편해졌다고 해도, 막상 해보면 이것저것 고려할게 많아서 free라고 할 정도는 아닌데. 기분이 좀 씁쓸하다.

미드: Game of Throne Season 7

역대 최강의 미드라고 할 수 있는 왕좌의 게임. 누가 미드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입에 올리게 되는 것 중 하나다. 물론 나는 브레이킹 배드를 좀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분위기가 너무 암울하고 숨이 막혀서 쉽게 추천하진 못한다.

스토리, 연출, 배우들의 연기, 캐릭터까지. 무엇 하나 빠질것 없는 최고의 드라마다. 솔직히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솔직히 시즌 7은 실망의 연속이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너무 올라가서 그런지, 급하게 마무리 짓다보니까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해보인다. 거기다가 시즌 6까지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해오다가, 시즌 7부터는 드라마가 원작 소설을 따라잡아서 드라마 작가와 원작 소설 작가가 드라마용 대본을 따로 쓰다보니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게 된 것 같다.

여기서부턴 내용상의 스포가 뙤는 내용이 많으므로…

그렇게 사납던 용이 존 스노우와는 한 번의 교감으로 친밀해지고, 그동안 현명한 판단만을 하던 존 스노우가 이해 못할 분노의 칼질을 언데드에게 해대다가 용 한마리가 죽어버리고 (이 용이 죽는 장면도 어이없긴 매한가지), 얼음장 아래에 깔린 용을 끌어올릴 지능이 있는 언데드들이 강 위의 얼음이 얼마나 두꺼운지 확인을 못해서 전진하지 못하는 장면 등등.

하지만 CG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용의 모션이라던가, 성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은 인정해줄만하다. 스토리 개연성의 부족함을 CG로 메꾼 느낌.

그래도 마지막 화에서 조금 왕좌의 게임다운 느낌을 되찾은 것 같다. 서세이의 물밑작업이 시작된다! 시즌 8이 빨리 나오길.

책: 목로주점

지원서를 쓰느라, 랩세미나 준비를 하느라, 논문을 쓰느라 등등 각종 핑계로 독서를 게을리하다가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에밀 졸라가 쓴 산업혁명 직후의 프랑스 파리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목로주점.

성실한 함석공이었던 쿠포가 불의의 사고로 희망을 잃고 술주정뱅이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니까 조금 서글펐다. 그래서 사람에게 내일은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꼈다.

포닥 1년차 때 끝이 없는 실험의 실패 때문에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자꾸 떠올라서 읽는 동안 조금 힘들었다. 거기다가 불행은 혼자오지 않는다고 누가 그랬던가. 실험도 안되고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도 있었고.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지난 31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 바닥에 붙어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젠가’ 나도 교수가 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었던 것 같다. 그 언젠가가 1년 후가 될지, 5년 후가 될지, 아주 먼 미래일지 몰라도 그 희망 자체가 힘이 되었다.

읽으면서 계속 든 느낌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막장드라마도 200년 후면 클래식이 될 수도 있겠다’였다.  일례로, 제르베즈와 쿠포가 현재 부부인데 거기에 전 남편인 랑티엔이 같이 한 집에 살게 된다. 그러면서 랑티엔이 제르베즈를 희롱하고, 쿠포와 랑티엔이 제르베즈를 때리는 등,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많았다.